〈다시 보는 재일동포들의 시 〉

〈다시 보는 재일동포들의 시 1〉국어강습소/남시우

나두야 간다.

모두 바쁜 이 세월에

어찌 남의 눈으로만 살가브냐

귀가 없나? 나에겐 눈이 없나?

막내놈이 말하더라

– 우리 나라에는 글 모르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대요!

딸년은 그 말을 받아 또 무어랬지!

야마모도란 성에

이찌로- 하고 이름을 붙일 때엔

헌신짝 같이 구박을 받은

나의 석자 이름-

떳떳한 우리의 나라와

귀할 손 그 이름들 옆에

가즈런히 우리 이름이 서는

자랑찬 이 해 밝은 날에

나두야 간다.

타국살이는 더욱 지쳐간다마는

저녁 이맘때는 나두

새파란 마음으로 젊어진단다

아차,

붓을 잡은 손끝이

얄밉게 떠는구나!

네가 그렇게 말을 안들어도

한번에 안되면 열번이 있으니

이날수 살아온 내.

꿍심은 이기지 못할꺼.

아비랑 누이랑

요지음도

부끄럼을 타는

그런 어리석은 량반이 있는가?

아비랑 누이랑

군정거리며 웃으며

모두 한마음으로

새 길을 닦는 이 글방

나두야 간다.

50이 넘어 눈을 뜨고

나두야 그 글방에 간다.

(창작년대 해방후. 허남기, 강순, 남시우시집《조국에 드리는 노래》중에서. 1956년 8월 발행, 재일본조선문학회 시분과위원회)

□해설

  • 조국에서 문맹이 없어졌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한 서정적주인공은 로동을 끝내고 저녁이면 강습소로 간다. 부끄러움을 털어버리고 글방에서 배우니 새파란 마음으로 젊어진다고 하면서… 해방조선의 해외공민된 긍지를 안고 제 나라 말과 글을 도로 찾게 된 우리 1세동포의 뜨거운 마음이 진실하게 표현되였다.
  • 남시우(1926-2007)는 해방직후부터 민족문화운동에 헌신. 총련결성후, 총련문화선전부에서 활동. 1956년 4월부터 조선대학교에서 사업하였으며 총련중앙 부의장, 조선대학교 학장을 력임하였다.

(소개 : 손지원 조선대학교 교수)

〈다시 보는 재일동포들의 시 2〉정어리/류인성

절어빠진 정어리

장보러 간 아빠가

지게다리에 매달고 온

정어리

리별의 아침

가난한 밥상우에

구워 내놓은 정어리 한마리

저가락 든채

가꾸만 한숨지었다네

오늘 저녁 반찬도

그날과 같이 정어리

부엌에서 딸이 굽는

정어리 냄새

지금은 예와 달라서

조국의 보살핌속에서

흥겨운 코노래가 절로 나노니

정어리에 깃든 슬픔을

내 딸이 어이 알꼬…

(1966.1)

□해설

《정어리가 고기인가 조선인이 인간인가…》 식민지노예로 살던 지난날 조선인차별과 멸시는 끄칠새 없었다. 시는 3, 4련에서 조국이 있어 오늘 흥겨운 코노래를 부르면서 료리를 장만하는  딸 (2세)의 모습을 보여준다. 짧은 시구절에 과거와 오늘의  대조가 훌륭히 이루어진 작품이다.

류인성(1916~1991)은 해방직후부터 민족학교 교원으로 활동하였다. 1964년이후 조선신용조합에서 사업하였다. 1982년이후 생을 마무리할 때까지 조은群馬신용조합 고문으로 사업하였다.

(소개 : 손지원 조선대학교 교수)

〈다시 보는 재일동포들의 시 3〉도둑놈/허남기

1949년 9월 8일, 공화국창건 1주년을 하루 앞두고 일본정부의 비법적인 탄압을 받아 재일본조선인련맹이 해산당했다.

도둑놈이 걷는다

도둑놈이 자동차를 탄다

도둑놈이 대낮에 거들거리며

경례를 받고

도둑놈이 대낮에 거들거리며

청사로 들어간다,

도둑놈은

서양차를 한모금 입에 넣었다가

무엇이 마땅찮은지 상판대기를 찌프리며

휴지통에다 뱉어버리고

《법무총재》실의 깊숙한 의자에

배때기만 불룩하게 앞으로 내밀고 앉아

제멋대로 법률을 날조하고

신문이나 보도기관에

원숭이 못지않은 낮짝과 함께

《견해》란것을 발표한다

그《견해》에 의하면

일본에 있는 조선인단체중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있고

가장 민주적인 조직인

재일조선인련맹은《폭력단》으로 보이고,

우리 자녀에게

우리 말과 우리 력사를 가르치는

우리 학교는

모두《폭력주의의 온상》으로 보여

조선사람의 재산은

마땅히 몰수하여야만 된다는것이다

그리고는

우리의 주장에는

시치미를 떼고

우리의 항의에는

모조리《견해의 차이》,

모조리《발상의 상위》

그리고는 도둑놈은

독 오른 살무사마냥

한바탕 우쭐거린다

오늘

그《법무부》에

항의하러 갔다가

《법무부》의 문패 곁에

《인권옹호위원회》란 문패가

또 하나 붙어있는것을 발견하고

이 나라의《인권》이란것이

도둑놈의 상투수단인

사기, 협잡과 밀접히

련결되여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아아, 백주대낮에

《법률》을 갓대신해쓰고

도둑질을 하는 도둑의 무리여!

(1949년작. 허남기시집《락동강》에 수록.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 1978년 발행)

□해설

시인 허남기(1918∼1988)에게는 《대표작》이 많다. 《찬가》,《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화승총의 노래(火縄銃のうた)》등이 그렇다. 모두 조선문학사에 길이 남을 시작품들이다. 시 《도둑놈》은 우리 조직과 우리 학교와 동포들의 재산을 아무런 법적타당성과 과학적근거도 없이 탄압하고 《몰수》하는것을 60여년전과 똑같이 오늘도 밥먹듯 하는 도둑의 무리의 날조와 파쑈적폭거는 더욱 악랄해지고있음을 되새기게 한다.

(소개:서정인 조대리사회 부리사장)

〈다시 보는 재일동포들의 시 4〉깨잎/오향숙

찌는듯한 더위속 입맛 잃을 때

의례히 그리운건 깨잎의 맛

한잎두잎 뜯어가는 등뒤에 대고

그게 뭐냐고

조심스레 묻는이 하나 있어라

《조선의 깨잎이랍니다》

《아이, 역시 조선량반이군요》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조선말

서로서로 마주보고

그저 놀랄뿐

몇해전 친정어머니한테서

얻어온 깨잎씨앗

고이고이 자래워 씨를 받아

여름 잘 타는 나의

귀한 반찬감 되였는데

몰랐어라

손바닥만한 땅뙈기의

이 깨잎포기가

가꾼 임자 조선사람임을

알게 할줄은

《가실에 씨 받으면 좀 주이소이》

경상도사투리가 더욱 맘 들어

서슴없이 찾아갈 약속을 하고

뜯은 깨잎 반나마 드렸어라

이날 저녁상에는

깨잎장아찌에 깨잎상, 깨잎지짐

어머니 물려준 귀한 깨잎

구수한 조선의 맛,

우리 민족의 맛이여!

(1987년 8월)

□해설

《깨잎》은 수수한 소재속에 민족의 향기가 담뿍 스민 좋은 작품이다. 친정어머니한테서 얻은 깨잎씨앗을 소중히 가꾸었더니 그 깨잎이 우리 동포와의 만남을 가져다준다. 한 깨잎을 두고 주고받는 말속에 그리운 고향이 보인다. 시인 오향숙(1946년~)은 히로시마현에서 태여나 체계적으로 민족교육을 받고 조선대학교 문학부교수, 공화국문학박사로 활동하였다. 시집에 《매화꽃》(2002년), 저서에 《조선근대사를 내달린 녀성들(朝鮮近代史を駆け抜けた女性たち)》(2008年、梨の木舎刊)이 있다.

(소개:허옥녀/문예동오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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