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무용가이며 안무가인 홍정화

주체107(2018)년 5월 7일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로당익장하는 홍정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사랑의 품속에서 자기의 예술적재능을 마음껏 꽃피우며 주체적문학예술의 화원을 아름답게 장식하고있는 문예인들가운데는 무용가이며 안무가인 홍정화도 있다.

생일 일흔돐 무용발표회때의 홍정화

홍정화는 1939년 8월 19일 평안북도 정주군(당시)의 빈곤한 철도로동자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남다른 예술적재능을 가지고있었으나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로 하여 그것을 꽃피울수 없었다.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강도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시켜주심으로써 홍정화는 배움의 나래를 한껏 펴고 체계적인 무용교육을 받을수 있었으며 평양가무단에서 무용배우로 활동하게 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주체48(1959)년 7월 홍정화가 출연한 독무 《환희》를 친히 보아주시고 어린동무가 동작이 민첩하고 발전성이 있다고 앞날을 축복해주시였으며 그후에도 여러차례 그의 무용공연들을 보아주시고 춤을 아주 잘 춘다는 높은 평가를 주시였다.

주체59(1970)년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직도 미흡한 점들이 많은 그를 기념비적무용작품들인 《눈이 내린다》,《조국의 진달래》,《사과풍년》의 주역들을 맡겨주시는 높은 신임을 베풀어주시였다.

홍정화는무용가로 활동는 전기간 《환희》(1959년), 《북춤》(1962년), 《나의 초소》(1969년), 《장고춤》(1979년) 등 자기가 창작한 10여편의 독무작품들과 다양한 형식의 무용작품들의 주역을 맡아 훌륭히 수행하였다. 이외에도 《경애하는 그이 품에 안긴 그 행복》,《가마마차 달린다》, 《우리는 조국의 수호자,행복의 창조자》와 같은 많은 무용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는 또한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비롯한 여러 축전들에 독무를 비롯한 무용작품들을 가지고 참가하여 6개의 금메달을 쟁취하였으며 수많은 외국공연활동으로 사회주의 우리 조국의 주체적무용예술의 발전적면모를 널리 시위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홍정화는 어릴 때부터 무용을 잘하여 세계적으로 소문난 좋은 동무라고 치하하시면서 그의 생일 60돐을 계기로 독무회를 조직해주시고 일흔번째 생일을 맞을 때에도 홍정화무용발표회를 진행하도록 은정깊은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그는 생일 70돐 무용발표회무대에 지난시기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였으며 국제무대들에서 금메달을 받은 작품들인 독무 《환희》, 민속무용 《3인무》, 쌍무 《목동과 처녀》를 가지고 출연하여 유순하고 건드러진 춤가락과 생기발랄하고 약동적인 률동들을 보여줌으로써 관람자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세상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생일 일흔돐 무용발표회의 무대에 나선 홍정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자애로운 품속에서 인민배우(1981년), 김일성상계관인(2002년)으로 성장한 홍정화는 80살을 가까이 하고있는 오늘도 조선무용가동맹의 책임적인 직책에서 열정과 패기에 넘쳐 사업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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