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서예는 자신의 꿈, 인생의 즐거움이라면서》문예동 神奈川 김희영씨

새 시대 민족문화운동의 선구자들/각지 문예동 맹원

문예동은 일본 방방곡곡에 흩어져있던 동포문학예술가들이 집결하여 1959년 6월 7일에 결성된 주체적이며 애국적인 첫 문예조직이다. 그때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오늘도 이역땅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 곧바른 한길을 내달리면서 《우리》의 문학예술을 창조해나가고있는 새 시대 민족문화운동의 선구자들을 소개한다.

2025.11.20

《서예는 자신의 꿈, 인생의 즐거움이라면서》

문예동 神奈川 김희영씨

가나가와 서예애호가들이 한결같이 기대하는 새 세대청년맹원이 있다. 학생시절로부터 사회인이 된 오늘까지 계속 서예활동을 해오는 김희영맹원이다.

그가 서예를 시작한것은 초급부 2학년시기였다.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서예교실에서 붓을 들기 시작한 그는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는것이 기뻐서 가나가와중고에 진학해서도 계속 이 서예교실을 다녔다. 그에게 서예를 배워준 스승은 현 중앙문예동 세예부장이며 문예동가나가와지부 서예부장인 리유화씨이다.

당시 조고졸업후에도 서예활동을 계속하는 청년은 거의 없었으나 그런속에서도 김희영맹원이 서예를 계속할 결심을 다지게 된것은 바로 스승의 영향이라고들 한다. 리유화씨는 판본체와 같은 여러가지 글체, 우리 글자의 발전력사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배워주었으며 윤동주를 비롯한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 글과 일본글로 멋지게 써서 일본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 애를 썼었다. 이처럼 서예교육을 통하여 민족인재를 키우고 작품창작활동으로 우리의 문화와 력사를 널리에 전하려 정열적으로 활동하는 스승의 모습에 김희영청년은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초급부생이 배우는 서예교실에 대학생이 되여서도 계속 혼자  다니게 되였다.

대학의 공부를 하고 한편에서는 일도 하면서 서예활동을 하는것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작품창작의 나날에 수십장, 수백장을 써봐도 납득이 되지 않아 전시장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은 너무도 미숙하다고 여겨져 힘을 잃을 때가 많았다고도 한다. 그럴 때 새로운 도전심을 불러일으켜준것도 바로 스승의 작품이였다. (나도 스승처럼 재일조선인밖에 쓸수 없는 그런 작품을 쓰고싶었다…)

사회인이 되여 학생지도도 조금씩 하게 되였다. 어린 학생들이 글을 잘 써서 기뻐하는 모습은 어제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것 같다고, 지도할수록 서예의 즐거움, 우리 글의 력사를 더 많이 배워주고싶다는 마음이 커간다고 하면서 이렇게 결심을 피력하였다.

《나의 꿈은 리유화선생님의 대를 이어 우리 학교 서예강사가 되는것입니다. 서예가 나를 조선사람으로 키워주었으니까요.》

(문예동 가나가와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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