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오랜 력사를 가진 조선부채​

주체111(2022)년 9월 14일 

오랜 력사를 가진 조선부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선조들이 이룩하여놓은 문화적재부가 많습니다.》

우리 민족이 창조한 문화적재부가운데는 오늘도 전해져내려오고있는 여름철의 필수용품인 부채도 있다.

처음에는 《부치는 채》로 불리우던것이 점차 부채라는 말로 변화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부채를 만들어쓴 력사는 매우 오래다.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는 고국원왕릉의 벽화에 부채가 그려져있으며 왕건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견훤이 그에게 공작선(공작새의 깃털로 만든 부채)을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부채를 오래전부터 만들어썼으며 삼국시기에는 그 제작기술이 상당히 발전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 고국원왕릉 –

부채의 종류에는 크게 둥근 부채와 접이부채가 있었다.

둥근 부채는 부채면이 둥글고 거기에 손으로 쥘수 있는 자루가 달려있으며 접이부채는 여러대의 가는 살을 한데 묶어 접었다폈다 할수 있게 되여있다.


– 둥근부채 –

접이부채는 가늘게 쪼갠 참대오리로 만든 부채살을 펼치면 해살모양을 이루도록 밑부분을 한데 묶고 여기에 천, 종이, 김 등을 붙여 만들었는데 장식과 꾸밈이 매우 정교하였다. 접이부채의 면에는 아름다운 산천과 실실이 휘늘어진 수양버들, 소담한 꽃송이들과 나비 등을 채색그림으로 생동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고양나무를 비롯한 나무와 비취옥을 비롯한 보석으로 매미, 오리, 가지, 고추, 국화 등을 형상한 장식물을 매달아 부채의 공예적가치를 돋구기도 하였다.


– 접이부채 –

우리 나라의 부채는 고려시기에 예술적가치와 정교한 제작솜씨로 하여 다른 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지난날 사람들은 더위가 시작되는 음력 5월초가 되면 부채를 만들어 마을사람들과 친구들사이에 서로 주고받군 하였다.

이밖에 부채는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의례용이나 장식용으로도 쓰이였다. 혼례때 신랑의 얼굴가리개로 쓰이는 부채, 보기 좋은 그림이나 멋진 시구절을 써넣은 집안장식품으로 보관해두는 부채 같은것이 그러한것이였다.


– 장식부채 –

또한 우리 선조들은 《부채타령》과 같은 노래도 지어불렀다.

여보시오 벗님네들

이내 부채를 골라보소

요내 부채를 골라보소

폈다 접어 접이부채

동해동천에 돋는 해를

부채살에 옮겼으니

해살부채가 여기 있소

팔월공산에 달이 떴다

이처럼 오랜 력사를 이어오는 부채는 오늘 우리 인민들의 생활에서 편리하게 리용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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