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학생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여/영원히 잊지 못할 조국방문의 나날

《조선신보》2022.04.15

영원히 잊지 못할 조국방문의 나날

조국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학생, 어린이들을 한없이 사랑하신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조국의 어린이들은 물론 멀리 이국에서 사는 재일조선학생들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였다. 주석님의 뜨거운 사랑과 배려가 있어 재일조선인운동의 믿음직한 계승자들이 자라나고 오늘날 총련은 대를 이어 주체적해외교포운동의 선구자로 영예를 떨치고있다. 1972년 난생처음으로 조국의 품에 안겨 주석님의 접견을 받은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축구소조와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음악무용소조원들의 감격의 나날을 전한다.

사회주의조국을 방문한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축구소조와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음악무용소조 학생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는 김일성주석님(1972년 8월 18일)

영광의 1972년 8월 18일

사회주의조국의 품에서 여름방학을 마음껏 즐기고있던 재일조선청소년학생들에게 있어서 8월 18일은 영원히 잊을수 없는 날로 기록되였다.

이날 오후 평양학생소년궁전은 재일조선청소년학생들과 조국학생들의 환호성으로 들끓었다.

꿈결에도 그리던 주석님께서 조국을 방문한 재일조선청소년학생들을 친히 만나주시려고 궁전에 나오시였다.

인사를 올리는 단장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주석님께서는 아이들을 데리고오느라고 수고가 많았겠다고, 조국에 와서 불편한 점들은 없는가고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이때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단위원장이 재일 60만동포들과 청소년학생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주석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하며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재일조선청소년학생들이 드리는 다함없는 축원의 인사를 받으시는 김일성주석님(1972년 8월 18일)

단위원장이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이기지 못하여 김일성주석님의 품에 얼굴을 묻자 여기저기에서 감격에 목메여 흐느끼던 학생들이 참고참던 격정을 일시에 터뜨리면서 주석님의 품으로 앞을 다투어 달려나가 그이의 옷자락과 팔소매에 마구 매여달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주석님께서는 학생들을 허물없이 모두 한품에 안으시고 천천히 2층휴계실로 올라가시였다.

주석님께서는 한 학생의 손을 잡아 옆의자에 앉혀주시고 한학생한학생에게 친히 이름과 나이, 부모와 조국에 와서 경기와 공연진행정형에 대해서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이국땅에서 자라나는 재일조선청소년학생들을 크나큰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여 다정히 이야기도 나누시고 다과도 함께 들어주시며 어떻게 하면 조국땅에 처음으로 찾아온 학생들에게 더 큰 기쁨을 줄수 있겠는가를 깊이 심려하시던 주석님께서는 학생들의 이제 남은 참관일정계획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백두산에 꼭 가보았으면 좋겠다고 청을 드리는 나어린 한 학생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참 용감한 학생이라고 못내 기특해하시며 주석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일본에서 청년들과 어린 동무들까지 이렇게 집단적으로 조국에 찾아온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열렬히 환영한다고, 특히 동무들이 이국땅에 있지만 다 건강해보이고 또 튼튼한 몸으로 온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이것은 다 우리 조국이 있기때문이다, 동무들도 자기 조국이 있기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답게 능히 자기 말로 공부하고 자기 나라의 력사를 배우며 자기 나라 노래를 부를수 있게 되였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가고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주석님께서는 옆에 앉은 나어린 학생의 손을 따뜻이 감싸쥐시고 오래동안 헤여졌다 돌아온 자식들에게 그동안의 집안형편을 이야기해주시듯이 오늘의 강력한 사회주의조국이 어떻게 건설되였는가에 대하여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주석님께서는 세상에 류례없는 험난한 시련과 자랑찬 투쟁의 나날 조국인민들과 청소년학생들이 위대한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휘하여 원쑤놈들이 100년이 걸려도 일어서지 못한다던 조국을 극히 짧은 기간에 복구한 사실들을 옛말처럼 감명깊게 들려주시였다.

계속하시여 동무들이 이렇게 복구된 자기의 혁명의 수도 평양에 찾아온것은 아마 큰 기념으로 될것이라고 하시며 재일조선청소년학생들이 언제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들로서 사회주의조국과 자기 당, 자기 인민을 사랑할줄 알아야 하며 훌륭한 공산주의자,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고 하시며 사업과 생활에서 지침으로 되는 강령적인 교시를 주시였다.

이날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예술소조원들의 공연을 친히 보아주신 주석님께서는 매 종목이 바뀔 때마다 제일 선참으로 크게 박수를 쳐주시고 잘한다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리고 원쑤놈들의 기만책동에 걸려 일본학교에 끌려갔던 한 어린 학생이 완강한 투쟁끝에 드디여 우리 학교로 다시 돌아온 사실을 내용으로 한 노래이야기를 보시면서는 자주 눈가에 손수건을 가져가시였다.

공연이 끝나자 주석님께서는 공연성과를 높이 치하하시며 꽃바구니를 전해주시고 몸소 무대에 오르시여 조국방문단 전체 청소년들과 함께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주석님께서는 동무들은 하나가 열, 열이 백, 백이 천을 끌어당기는 방법으로 조선사람을 만드는 운동을 하여야 한다고 간곡하게 교시하시였다.

이날 밤 헤여지기에 앞서 주석님께서는 몸소 친필로 자신의 존함을 아로새겨넣으신 손목시계를 방문단 51명에게 선물로 주시는 크나큰 사랑을 또다시 베풀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또 무엇인가 더해주고싶은 심정을 못내 이기지 못하시여 그날 밤으로 방문단의 숙소에 친히 뜨거운 은정이 담긴 선물들을 보내주시였다.

자신께서는 그 이튿날에는 벌써 먼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면서도 또다시 해당부문 일군들을 전화로 찾으시여 학생들의 참관일정을 조국을 처음 보는 학생들의 특성에 맞게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잘 조직해주도록 이르시였다.

그리하여 재일조선청소년학생들은 조국에 머무르는 40여일동안에 이국땅에서 언제나 마음속에 그리던 유서깊은 만경대와 백두산을 비롯한 혁명사적지들과 도시와 농촌, 공장과 학교 그리고 풍치아름다운 금강산과 송도원, 개성의 명승지들을 마음껏 돌아볼수 있었다.

조국을 떠나기 닷새전에도

방문단이 조국을 떠나기 닷새전인 1972년 9월 2일에 있은 일이다.

주석님께서는 몸소 재일조선청소년학생들에게 평양시안의 청소년들과의 뜻깊은 련환대회를 마련하여주시고 친히 참석하시는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주석님께서는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해하시며 그들에게 헤여지는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돌아가서 공부를 잘하고 사회주의조국을 사랑하며 총련조직주위에 더욱 굳게 뭉쳐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한다고 다시금 강력적인 과업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이날의 뜻깊은 련환대회장에서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축구소조 조장이 백두산에 올라가보고 지은 자작시 《백두산에 올라서》라는 시랑송과 자기들이 작사작곡한 합창 《조국을 떠나면서 부르는 노래》를 들으시며 주석님께서는 자주 손수건을 꺼내시여 눈가와 흐려지는 안경을 닦으시였다.

인자하고 다심하신 친어버이의 슬하를 떠나고싶지 않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을 차례차례로 품에 안아 그들의 볼을 몇번이고 정답게 비벼주시고 눈물을 닦아주시는 그 모습에 온 장내는 뜨거운 격정으로 설레이였다.

주석님께서는 문밖에까지 몸소 나오시여 또다시 학생들과 교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돌아가면 일본에 있는 동포들과 전체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디 몸조심해서 잘 가라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8.18교시접수 40돐〉1972년 조국을 방문한 학생, 교원들이 기념모임

《조선신보》2012.09.01

1972년에 조국을 방문한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축구소조와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음악무용소조 학생, 교원들의 조국방문 40돐기념모임이 7월 27일에 진행되였다.

40년전, 조국왕래의 길이 열리고 재일조선학생소년들이 조국에서 여름방학을 마음껏 즐기며 예술공연을 하고 축구경기를 하는 등 꿈같은 일이 처음으로 현실화되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역만리에서 나서자라도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떳떳한 조선사람이 되라고 하시며 해마다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였을뿐만아니라 어머니조국땅을 처음으로 밟게 된 재일학생소년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고 온갖 사랑과 배려를 다 돌려주시였다.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동상에 정중히 꽃바구니가 진정되였다.

당시 학생들과 교원들은 주석님탄생 100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맞는 조국방문 40돐에 즈음하여 주석님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잊지 못할 그때를 회고하자고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당시 인솔교원들과 학생들 51명중 28명이 참가하였다.

교원들은 거의다 70대에 이르고 학생들은 모두 50대가 되였다. 회장에 한사람한사람 들어설 때마다 오래간만의 상봉인지라 환성이 터지고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먼저 참가자들의 근황이 소개되였다. 인솔교원의 한사람이였던 주영호씨가 모임을 준비해온 경위를 설명하고 《태양절 100돐이 되는 올해 이렇게 모이게 되여서 기쁘다. 오늘은 40년전 조국방문한 그때를 추억하면서 의의깊게 회포를 나누자.》며 개회선언을 하였다.

참가자들은 40년전의 8월 18일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뵙고 감격에 휩싸이던 그때의 일화들과 각지 참관 그리고 축구경기의 구체적인 장면 등 뜨거운 추억을 감회깊이 더듬어보았다.

당시 요꼬하마초급 박용덕교장과 리금희교원, 도꾜중고 김명식축구소조 감독과 구영생체육교원이 감명깊은 발언들을 하였다.

요꼬하마초급 학생이였던 서석희씨(현재 히로시마조선초중고급학교 교무주임)는 《그때 10살,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였기때문에 자신들이 체험하고있는 일의 무게를 잘 알수가 없었다. 지금에야 겨우 얼마나 격동적인 인생체험을 했던가를 알게 된다.》고 말하였고 축구소조원들도 《40년전의 조국방문은 그 이후 인생에 참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김원환씨(당시 총련중앙 교육국 지도원)는 《우리모두 조국방문의 그 나날에 받아안은 영광을 평생 간직하고 민족교육을 비롯한 동포사회발전을 위한 애족애국의 한길을 끝까지 걸어나가자.》고 말하였다.

8월 2일,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셔진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동상에 정중히 꽃바구니가 진정되였다.

드리워진 댕기에는 《1972년 조국방문 도꾜조선중고급학교 축구소조원일동,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음악무용소조원일동》이라는 글발이 씌여져있었다.

세월은 흘러도 주석님을 그리워하며 다함없는 감사와 흠모의 마음을 담아 당시 소조원들을 대신하여 조국방문중이였던 한 인솔교원이 조국방문차에 삼가 올렸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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