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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문학예술의 계승자, 혁신자〉각지 문예동 맹원들②
우리 말, 우리 노래와 함께/리유희씨 문예동 히로시마지부 문학부
《조선신보》2022.02.09
문예동은 일본 방방곡곡에 흩어져있던 문학예술가들이 집결하여 1959넌 6월 7일에 결성된 주체적이며 애국적인 첫 문예조직이다. 이역땅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곧바른 한길에서 문학예술을 창조하여온 각지 문예동 맹원들의 열정과 헌신을 한달에 1번 소개해나간다.(협력=문예동중앙)
학생들에게 우리 말을 배워주는 리유희씨
문예동 히로시마지부 문학부 리유희씨는 우리 학교에서 배운 조선의 문학작품이나 노래를 무척 사랑하는 학생이였다. 조선대학교에서는 작품과 가사에 담겨진 심오한 뜻과 그 력사적인 배경을 깊이 알게 되였다.
그는 《우리 말, 우리 노래는 나에게 감동을 주고 사색을 깊이게 해주고 깨달음을 주었습니다.》고 말하였다.
대학을 졸업하여 히로시마초중고 국어교원으로 교단에 섰고 출산을 계기로 퇴직하게 되였다. 가정일과 애를 키우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사람들은 말했다. 《애를 키우는것이 우선》이고 《그것이 녀성의 인생》이라고…
당연히 아이는 사랑스럽고 그의 성장은 자신의 기쁨이였다. 그러나 인생이 《중단》되여있는것 같은 안타까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말, 우리 노래와 더 함께 있고싶구나…)
그런 생활을 3년쯤 보낸 어느날, 딸을 히로시마초중고 유치반에 보내게 된것을 계기로 그의 교원 복귀에 대한 이야기가 제기되였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있던 그로서는 자신이 학교에 다니면서 애를 보내는것은 힘든 일이였으나 우리 말과 노래로 맺어진 자신의 인생과 《재회》하고싶은 마음 그리고 자기 딸에게 민족교육을 시켜주고싶다는 념원이 더 컸다.
그리하여 교원으로 복직한 그는 현재 매일 2명의 딸을 데리고 학교로 간다.
우리 말, 노래, 춤을 익히며 하루하루 성장하는 딸을 보면서 먼길이라도 우리 유치원에 보내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민족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은 한결 강해졌다.
그는 국어교수, 성악소조 지도를 맡으며 공연의 사회원고도 집필한다. 우리 말, 우리 노래를 통해 민족의 넋을 지켜가는것을 교원의 임무 그리고 문예동 맹원으로서의 임무로 여기고 헌신하고있다.
《이렇게 우리 말, 우리 노래와 함께 있는 이 자리가 나에게 있어서는 민족교육이 안겨준 더없이 귀한 선물과 같으며 이 자리에서 오늘도 우리 말, 우리 노래와 함께 사는것은 한량없는 기쁨이며 보람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