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관록있는 조각가, 유화가/인민예술가인 신학선

관록있는 조각가, 유화가

우리 나라의 이름있는 미술가들중에는 김일성상, 김정일상계관인이며 인민예술가인 신학선도 있다.

그는 근 50년에 달하는 창작생활기간 만수대대기념비, 삼지연대기념비, 서해갑문기념비 등 우리 나라 대기념비들의 창작사업에 참가하였으며 수십점의 국보적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첫출발

신학선은 1945년 함경북도 회령시의 음악가가정에서 여섯남매(아들 셋, 딸 셋)의 맏아들로 출생하였다.

아버지 신동진은 학선에게 사물현상을 비유하여 표현하는 특기가 있다고, 앞으로 시인이 되는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여가시간마다 그가 쓴 시를 봐주군 하였다. 어느날 아버지가 일하는 사업소주변에서 놀고있던 그는 그곳 미술가의 손에 이끌려 화실에 들어가게 되였다. 방에는 유화구냄새가 꽉 차있었고 창작중이거나 완성된 그림들이 벽에 걸려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미술의 세계를 처음으로 목격하였으며 그림에 흥미를 가지게 되였다.

그의 아버지는 시적인 령감도 있고 음악적인 천성도 있었지만 그림에 더 애착을 가지고있는 학선에게 미술도 예술의 한 종류이라고 하면서 그가 미술공부를 하는것을 찬성하였다고 한다. 중학교에서 그는 미술소조를 다니였으며 이름난 미술가가 될 포부를 안고 그림그리기에 전념하였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것은⋯

《신학선은 조각을 감정있게 만드는 정열적인 창작가이다.》

이것은 2019년에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던 중국의 이름있는 화가인 사국량이 한 말이다.

1960년대초 우리 나라에서 천리마운동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던 당시 수도 평양에서는 만수대언덕에 천리마동상을 건립하는 사업이 진행되고있었다. 그때 중학생이였던 신학선은 거대한 천리마동상을 보면서 조각의 위용에 대하여 체감하였고 조각을 하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였다고 한다.

그후 그는 자기의 소망대로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조각학부에서 공부하였으며 졸업후 만수대창작사에 배치되였다.

조각창작은 대상에 대한 높은 묘사력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그는 어디에 가든 속사수첩을 몸에 품고 다니였고 매일 일기를 쓰듯이 그림을 그리였다.

휴식일이면 그는 세계적인 미술발전추세에 대한 자료들을 열람하기 위하여 도서관 등을 찾아다니였다. 창작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나라의 곳곳에 대기념비들을 건립하기 위한 형성안창작사업에 참가하게 되였으며 맡은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서해갑문기념비형성안을 창작할 때 그는 솟구치는 물기둥과 함께 날바다를 헤치는 강의한 인간의 조형적형상을 창조하여 자연을 정복하는 인간의 힘을 예술적화폭으로 훌륭히 보여주었다.

창작활동을 하는 나날에 그가 사랑하는 처녀에게 《내가 제일 사랑하는것은 조각이고 그다음에 동무야!》라고 말하여 처녀를 울린것이 오늘도 일화로 전해지고있다.

그는 조각분야에서 돌조각, 금속조각, 석고조각, 나무조각 등 무엇이나 막힘이 없었다. 조각, 그것은 곧 신학선자신이였다. 조각 《격전》, 《두 머슴》, 《서산대사》, 《리순신장군》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국가적인 미술전람회, 미술전시회 등에서 특등상, 1등상을 수여받았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들에 초청되여 많은 기념비들과 초상조각들을 훌륭히 창작하였다. 대표적으로 라오스의 카이손 폼비한박물관기념비와 카이손 폼비한동상을 들수 있다.

축복받은 나의 삶

지금으로부터 6년전 만수대창작사창립 60돐 경축공연무대에서 신학선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가요 《축복받은 나의 삶》을 불러 관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만수대창작사에서 공훈조각창작단 단장, 창작국 국장의 직책을 력임하였으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으로 오랜 기간 활동하였다.

인생말년에 와서 그는 유화창작으로 방향전환하였다. 자연에 대한 깊은 지식과 풍만한 정서는 그가 유화작품창작에서 뚜렷한 개성을 나타낼수 있게 한 자양분으로 되였다.

2020년에 년로보장을 받고 집에 들어온 후 그는 새 작품창작을 위하여 안해와 함께 시내의 여러 농장을 답사하였으며 그 과정에 유화 《협동벌의 저녁》을 처녀작으로 내놓았다. 그후에도 그는 유화 《풍랑을 맞받아》, 《해저무는 강가에서》, 《들판의 말들》, 《숲속의 나무다리》 등 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여내놓았다. 그의 작품들은 정서적표현이 강하고 색채가 생신하며 단칼묘사의 특이한 기법이 적용된것으로 하여 미술계의 감탄을 자아내였다. 일부 작품들은 조선미술박물관 소장품으로 되였다.

지난 4월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열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탄생 113돐경축 로화가들의 미술전람회에 그는 유화 《풍년든 농장벌》, 《즐거운 야영생활》을 내놓았다. 그의 창작성과를 두고 동료들은 신학선이 조각가로부터 유화가로 환생했다고 말하였다.

오늘도 그는 전진하는 조국의 모습과 시대의 숨결을 반영한 가치있는 작품들을 창작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색하며 붓을 달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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