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장편서사시 《백두산》

장편서사시 《백두산》조기천

머리시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하련다!
≪백호≫의 소리없는 웃음에도
격파 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이 땅을 파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탄 한가슴을 추기고
천년 이끼 오른 바위를 벼루돌 삼아
곰팽이 어렸던 이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 듯 고루며
이 땅의 이름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하련다!

첩첩 층암이 창공을 치뚫으고
절벽에 눈뿌리 아득해지는 이 곳
선녀들이 무지개 타고 내린다는 천지
안개도 오르기 주저하는 이 절정!
세월의 류수에
추억의 배 거슬러올리라-
어느 해 어느 때에
이 나라 빨찌산들이 이 곳에 올라
천심을 떠받으며
의분에 불질러
해방 전의 마지막 봉화 일으켰느냐?

이제 항일의 의로운 전사들이
사선에 올랐던 이 나라에
재생의 백광 가져왔으니
해방사의 혁혁한 대로
두만강 물결을 넘어왔고
백두의 주름주름 바로 꿰여
민주조선에 줄곧 뻗치노니
또 장백의 곡곡에 얼룩진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력력하노니
내 오늘 맘놓고 여기에 올라
삼천리를 손금같이 굽어보노라!

오오 조상의 땅이여!
오천년 흐르던 그대의 혈통이
일제의 칼에 맞아 끊어졌을 때
떨어져나간 그 토막토막
얼마나 원한이 선혈로 딩굴었더냐?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몇만의 지사 밤길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았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 듯 넘나든 이 그 뉘냐?
산아 조종의 산아 말하라-
해방된 이 땅에서
뉘가 인민을 위해 싸우느냐?
뉘가 민전의 첫머리에 섰느냐?

쉬- 위-
바위 우에 호랑이 나섰다
백두산 호랑이 나섰다
앞발을 거세게 내여뻗치고
남쪽 하늘을 노려보다가
≪따- 웅-≫ 산골을 깨친다
그 무엇 쳐부시련 듯 톱을 들어
≪따- 웅-≫
그리곤 휘파람 속에 감추인다
바위 호을로 솟아
이끼에 바람만 스치여도
호랑이는 그 바위에 서고 있는 듯
내 정신 가다듬어 듣노라-
다시금 휘파람소리 들릴지,
산천을 뒤집어 떨치는
그 노호소리 다시금 들릴지!

바위! 바위!
내 알 리 없어라!
정녕코 그 바위일 수도 있다
빨찌산 초병이 원쑤를 노렸고
애국렬사 맹세의 칼 높이 들었던 그 바위
빨찌산 용사 이 땅에 해방의 기호치던
장백에 솟은 이름모를 그 바위
또 내 가슴 속에도 뿌리박고 솟았거니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더듬으며
가난한 시상을 모으고 엮어
백두의 주인공 삼가 그리며
삼천만이여, 그대에게
높아도 낮아도 제 목소리로
가슴헤쳐 마음대로 말하련다!

1

1

고개 뒤에 또 고개-
몇몇이나 있으련고?
넘어넘어 또 넘어도
기다린 듯 다가만 서라!
한 골짜기 지나면
또 다른 골짜기-
이깔로 백화로 뒤엉켜 앞길 막노니
목도군이 고역에 노그라지듯
골짜기는 으슥히 휘늘어져 있어라!
울림으로 빽빽하여 몇백 리
백설로 아득하여 몇천 리-
사나운 짐승도
발길 돌리기 서슴어 하고
날새도 고적에 애태우다
날아날아 떠나고야 마는
장백의 중중심처 홍산골-
절벽 사이 칼바람에 쌓인 눈 우에
뚜렷이 그려진 이 발자국,
어디론지 북으로 북으로 가버린
가없는 외로운 이 발자국-
어느 뉘의 자취인가?
눈보라에 길 잃었던 포수
절망에 운명 맡긴 자취인가?
어느 뉜지 북으론 웨 갔느뇨?
북에선 백두산이 백발을 휘날리며
한설을 안아 뒤뿌려치는데,
서리발로 한숨 쉬고 있는데!

2

눈 우에 뚜렷한 이 발자국
눈여겨 살피라-
그 속엔 절망의 흔적 없으리,
지난 밤 흰 두루마기 사람들
설피 신고 이곳 꿰어 북으로 갔으니
사람은 몇백이나 되어도
발자국은 하나만 남겨두고-
그런데 오늘은 이 발자국 허물이며
수십의 일제의 무리
허리까지 눈무지에 빠지며
≪토벌≫의 큰 불 밀림에 지르련다
맨 앞엔 군견 두 마리 날뛰고
그 뒤엔 안경이 번뜩이고
또 그 뒤엔 서리어린 총부리와 총부리-
≪대체 한 사람의 발자국뿐-
모두 어디로 갔느냐 말이야!≫
절벽에 안경을 두리번두리번-
맨 앞놈의 중얼거림
≪글쎄요… 신출귀몰은…≫
옆놈의 대답 끝나기도 전에
≪땅≫- 총소리
얼어든 대기를 깨뜨린다.
≪안경≫이 눈에서 다리도 못뺀 채
경례나 하듯이 꺼꾸러진다.

3

그다음…
그담엔 홍산골이 터졌다-
총소리, 작탄소리, 기관총소리,
놈들의 아우성소리!
그담엔 절벽이 무너졌다
다닥치며 뛰치며 부서지며
바위돌이 골짜기를 쳐부신다,
≪만세!≫ ≪만세!≫- 골안을 떨치며
산비탈에 숨었던 흰 두루마기들
나는 듯이 달려내렸다
여기서도 돌격의 ≪악!≫
저기서도 ≪악!≫ ≪악!≫
설광과 마주치는 날창
번개같이 서리찬 하늘을 찢는다.
≪동무들!
한 놈도 놓치지 말라!≫
이것은 작렬되는 육박의 첫 구령소리,

4

산비탈 바위 우에
청년 한 분 버쩍 올라선다
후리후리한 키꼴에
흰 두루마기자락이
대공으로 솟아오르려는
거센 나래같이 퍼덕이는데
온몸과 팔과 다리-
모두 다 약진의 서술에 불붙고
서리발 칼날의 시선으로
싸움터를 단번에 쭉- 가르며
≪한 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는 부르짖었다
바른손 싸창을
바위 아래로 번쩍이자
마지막 발악쓰던 원쑤 두 놈이
미끄러지듯 허적여 뒤여진다-
≪한 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는 재쳐 부르짖었다.
이는 이름만 들어도
삼도일제가 치떠는
조선의 빨찌산 김대장!
이는 장백을 쥐락펴락하는,
태산을 주름잡아 한손에 넣고
동서에 번쩍!
천리허의 대령도 단숨에 넘나드니
축지법을 쓴다고-
북천에 새 별 하나이 솟아
압록의 줄기줄기에
그 유독한 채광을 베푸노니
이 나라에 천명의 장수 났다고
백두산두메에서 우러러 떠드는
조선의 빨찌산 김대장!

5

육박의 불길 멎었을 때
밀림의 주인공 빨찌산들
주섬주섬 원쑤의무기 거둔다
몇 놈이나 복수의 칼 맞았느냐?
몇 놈이나 빨찌산전법에
≪천황폐하≫도 산산 줄달음에 팽개치고
≪무사도≫도 갈 데로 가라-
도망치다 엎드러졌느냐?
≪한 놈도 빼우지 않았습니다≫
철호의 보고
≪놈들은 이번에도
무장 바치러 왔지!≫
김대장의 높은 말소리
그리곤 호탕한 웃음소리-
≪하…하…하≫
함박꽃인 양 그 웃음소리
떨기떨기 내려져 눈 우에 꽂기는 듯!

6

이날 밤에 눈이 내렸다-
하늘도 땅도 바위츠렁도
홍산골 싸움터도
눈 속에 묻히였다.
이깔밭만 칠월의 꽃피는 삼밭이 되고
대부동 고목에도 때아닌 꽃이 피다
이 밤 빨찌산부대
나흘 만에 천막에 들다!
내굴냄새 웨 그리도 구수하고
모닥불도 불꽃채로 품 속에 껴안을 듯,
이날 밤 대장이 든 천막엔
새벽까지 등불이 가물가물…
허더니 아침엔 눈보라치는데
정치공작원 철호 먼길 떠났다.
전송하는 대장의 말-
≪철호 조심하오! 믿소!≫
덤썩 틀어쥐는 대장의 손길
심장 속에 해발을 일으켜라,
해는 눈보라 속에 숨어 있어도
추위는 박달같이 땅을 얼궈도-

7

눈보라…눈보라…
겨울이 마지막 악을 쓴다
무엇이나 찾는 듯 골짜기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도
잣솔을 뒤잡아흔들며
잉-잉 통곡치누나…
자작나무 휘여잡고
못살겠다 몸부림치다가도
노한 짐승같이 절벽에 달려드누나…
절벽에 달려들어선
쳐부시고 딩굴고 물어뜯다가는
산등에 올라 미친 듯 아우성치며
하늘도 땅도 휩쓸어가지고
동남으로 줄달음치누나!
눈보라…눈보라…
네야 산 넘고 골 지나 또 지나
압록강까지 이르리라!
너를 동무 삼아
철호 저 산 넘으리!
압록을 건너 조상의 땅 밟으리!
눈보라! 눈보라!
듣느냐?
너는야 철호를 도와주거라-
너도 장백의 눈보라 아니냐!
철호는 멀리도 간단다
국경선 H시도 그의 길에 놓였고
성진 함흥도 가야만 되고,
너 장백의 눈보라야!
불어 또 불어 철호를 감추라-
일제를 기절케 하라.
불어 또 불어 철호를 건네우라
압록강을 건네우라!

2

1

안개 내린다-
산촌에 저녁안개 내린다
어둠을 거느즉이 이끌고
길잡이도 없이 한 자욱 두 자욱
화전골 오솔길을 더듬어
저녁안개 두메로 내린다.
안개 내린다-
흰 양의 떼인 양 꿈틀거리며
사발봉 츠렁바위에 쓰다듬다가
남몰래 슬며시
솔밭에 숨어들더니
그래도 마을에 내려서
밤이라도 편히나 쉬려는 듯
안개 내린다-
백두산에 안개 내린다!

2

≪에그! 벌써 저무는데-≫
칡뿌리 깨는 꽃분이 말소리,
저물어도 캐야만 될 그 칡뿌리
저녁가마에 맨 물이 소품치려니,
쌀독에 거미줄 친 지도 벌써 그 며칠
손꼽아 헤여서는 무엇하리!
≪에그! 벌써 저무는데!≫
그래도 캐야만 될 꽃분의 신세
저녁도 아침도 칡뿌리로 비제비거니,
어둠이 대지를 덮으려 한다.
날새도 솔잎새에 날아든다
마을이 안개에 잠기였다
그래도 바구니는 채워야 할 꽃분이 신세-

3

아아 칡뿌리! 칡뿌리!
이 나라의 산기슭에서
봄이면 봄마다 어김도 없이
꽃은 피고 나비는 넘나들어도
터질 듯이 팅팅 부은 두 다리 끄을며
바구니 든 아낙네들이 웨 헤맸느뇨?
백성이 한평생 칡넝쿨에 얽히였거니
이 나라에 칡뿌리 많은 죄이드뇨?
음식내에 치워 사람은 쓰려져도
크나큰 창고, 넓다란 역장과 항구엔
산더미같은 쌀이 쌓여
현해탄을 바라고 있었으니
실어간 놈 뉘며 먹은 놈 그 뉘냐?
아아, 칡뿌리! 칡뿌리!
백성은 네게도 목숨 못단 때 많았거니
이 나라에 네가 적은 죄이드뇨?

4

까마귀 날아지난다-
까욱- 까욱-
꽃분이를 굽어보며-
까욱- 까욱-
≪에그! 가야지!≫ 꽃분이 일어선다.
한 손으로 이슬에 적신 치마자락
다른 손엔 어둠이 드러누운 바구니
안개 헤치며 오솔길을 내려온다,
솔밭도 어둑어둑
맘속도 무시무시.
이때 그림자인 듯 언 듯-
솔밭에서 사나이 나온다
≪에구? 웬 사람인가?≫
어느덧 꺼멓게 길 막는다
도깨빈 듯 꺼멓게 길 막는다
귀신이냐? 사람이냐?

5

≪아가씨 김윤칠이라 아시는지?≫
가슴속엔 돌멩이 떨어진 듯
그래도 처녀의 시선은 빨랐으니
햇볕에 따고 탄 사나이의 낮
처녀의 마음 꿰뚫는 그 시선-
≪김윤칠? 저의 아버지인데…≫
의문에 질린 처녀의 기색
≪아, 그럼 당신은 꽃분이?≫
처녀의 빛나는 두 눈동자
≪아, 이것도 천운이라 할가…≫
사나이 부르짖으며
휘익 솔밭으로 돌아서더니
난데없는 뻐꾹소리 높았다-
뻐꾹- 뻐꾹-
잠잠하던 솔밭도 기쁘게 화답한다-
뻐꾹- 뻐꾹-
또 솔밭 속에서 나오는 두 사나이.

6

소나무 뒤에 숨어앉은 네 사람-
한 사람은 철호였으니-
눈보라 속에 먼먼 길 떠나더니
어느 때 어느 곳에 갔다가
무슨 일 하다가
양지쪽 잔디 언덕마냥
파-란 꿈속에 포근하고
진달래아지에 봄 맺히는 이때
웬 짐짝 짊어지고
솔개골에 왔는고?
산이면 몇이나 넘었고
밤길은 얼마나 걸었던고?
두어라, 물어선 무엇하리,
안 물은들 모르랴!
다른 사람은 중로인-
이 밤으로 약재 걸메고
홍산으로 갈 함흥로동자-
홍산 속에 이름없는 새 마을 있다네
그 마을엔 병원도 있는데
병자도 의사도
≪동무≫라 서로 부른다네.
또 다른 사람은 처호의 련락원-
이 밤으로 H시로 가야 될
어느 때나 웃음 잘 웃고 노래 잘하는
어느 때나 ≪아리랑고개≫ 넘는다는
영남이란 열 여섯의 소년.

7

≪나는 박철호라 부르우,
얼마나 괴로우시우?≫
길 막던 사나이의 첫 말,
솔밭은 어둑해져도
꽃분의 뺨엔 붉은 노을-
≪아이고! 철호동무!≫
가늘게 속삭일 뿐.
처녀는 면목도 모르며
한 해나 그의 지도 받았다-
삐라도 찍어보내고
피복도 홍산으로 보내고.
중년은 되리라 한 그-
그는 새파란 청년,
강직하고도 인자스런 모습
호협한 정열에 끓는 눈-
(스물댓이나 되었을가?)
머리 숙이는 처녀의 생각.
떠날 동무들게 마지막 부탁하고
솔개골에 머문다면서
≪꽃분동무,
등사기 멀리 있수?≫
철호의 묻는 말
≪예, 념려 마읍소!≫
꽃분의 대답.
샘터 돌담불에 감춘 등사기
어두워지면 가져오리라-
꽃분이 생각한다.
≪자, 그러면 동무들!≫
철호 일어서며 말한다.
마을은 잠든 듯
젖빛 솜을 막 쓰고
오로지 순사주재소 높다란 대문간만
우둑이 상 찌프리고
마을을 흘겨보는 듯.
어둠은 산촌을 누르며 막 들어서는데
화전골 솔밭 속엔 네 사람의 말없는 리별.
≪자, 그러면…≫
마음들이 엉성키는 그 악수
그리곤 심장의 벽을 툭 울리는 리별의 첫 발자취소리!
전우들의 악수-
그것은 싸움의 맹세였다.
승리의 신심이였다.

승리의 신념이였다.
우리의 동무들이
그렇게 악수하고
탄우 속으로 뛰여들었고
사지에 선뜻 들어섰다.
그렇게 악수하고
감옥에 뒤몰려갔고
교수대에 태연히 올라섰다.
아아, 어린애의 웃음같이도 깨끗하고
어머니의 사랑같이 꾸준하고
의의 선혈같이 빨간
적도의 태양같이 열렬한
충직한 전우의 그 악수!…

3

1

머나먼 옛날
맥두산 포수막이
잣솔밭에 숨어 있는 곳-
소리개 많다 하여 솔개골,
허나 그렇게 많던 소리개도
그림자까지 찾을 길 없어지고
사발봉 우엔 외가마귀 앉아
두메를 하소연하듯 울고만 있어라!
옛날엔 범 잡는 포수들이
저녁이면 모닥불 옆에 모여앉아
래일의 희망을 떳떳이 그리며
화성대 닦고 창끝 버렸으리!
그러나 조상의 녹쓴 화성대도
귀뿌리 어루만지며 주재소에 바치고
포수의 후손들은
검둥이 화전농이 되었다.

2

세상에서 떨어져나간 솔개골-
이 마을에 김윤철이 산다.
피투성의 ≪3.1≫을 다시 맞은 해 봄
안해도 놈들의 뭇매에 죽고
의병들도 두만강 건넜을 제
참나무통에 의의 총 감추고-
품팔이로 이곳저곳-
몇 해인가 보내다가
이 솔개골에 화전농이 되었다.
혜산에 있는 어린 딸 데려다가
분노도 희망도 두메의 흙속에 묻고
그날그날 보내더니
지난해 어느 때부터
새 희망 새 힘 얻었다.
그것은
솔개골에 이런 전설 돌던 때-
≪백두산 속엔 큰나큰 굴,
해도 달도 있고 별도 반짝이는
넓으나 넓은 굴 있는데
그 속에선 용사 수만이 장검을 간다고,
장검을 바위돌에 갈면서
령 내리기만 기다린다고,
때가 되면 령이 내리고,
령만 내리면
석문이 쫘악 열리고
석문만 열리면
용사들이 벼락같이 쓸어나오고
용사들만 쓸어나오면
이 땅에 해방전이 일어난다고
일제를 쳐부시리라고-≫
이때부터 꽃분이도
철호의 지도 받았고
이때부터 백두산을 바라보면
마르고 쪼들린 마음속에 오월의 대하인 양 격랑이 도도

3

백두산! 백두산!
너, 세기의 증견자야!
칭기스한의 들띄우는 말발굽도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피묻은 칼도
너의 가슴에 잊히지 않은 상처를 남겼고
오백년 왕업도
사신의 두 어깨에 치욕의 짐이 되어
너의 등골에 모멸의 발자국 치며
해마다 압록을 건너야만 될 때도
인민만은 자유의 홰불을 쳐들고
홍경래의 창기를 뒤다랐고
갑오의 싸움을 펼쳤다.
허다가 반만년 다듬기운 이 땅이
일제의 독아에 울크러질 제
백두야, 너도 가슴막히여
숙연히 머리 숙이였지!
그러나 인민만은 봉화를 일으켜
칼을 들고 의병이 일어났고
피를 들고 ≪3.1≫이 일어났다.
파업의 굴뚝에 분노 서리우고
≪소작≫을 안고 주림이 통곡칠 때
또 송화강 물결까지도
일제의 그림자에 거칠어지고
만리장성도 놈들의 멸시에 맞아
조약돌로 딩굴 때
이 나라의 빨찌산들이 일어나
반항의 기치를 피로 물들이거니
아아, 백두야, 네 얼마나
동해의 날뛰는 파도인 양
격분에 가슴을 떨면서
바다 속 섬나라 저 원수를-
하늘아래 한가지 못살 저 원쑤를
피어린 눈으로 노렸느냐!

4

꽃 같다고 꽃
분같이 희다고 분-
꽃분의 어린 때는
혜산 어느 마을에서 지냈다
솔개골로 온 지도 십여 년-
학교라곤 구경도 못한 꽃분이
허나 기나긴 겨울밤은 한글의 밤-
아버지의 가르침 받아
손싸래에 때묻고 모지라진
몇 해 전 ≪신녀성≫도 쉽게 보았다.
임당수 깊은 물에
심청이를 버린 그 배사공들이
한없이 야속하다 눈물도 지었고
드덜기 캐면서도
신관사또 변학도의 목 버이노라
중동을 찍어 동댕이도 쳤다.
때로는 아버지의 구슬픈 이야기-
그것은 소녀의 가슴속에
세월은 흘러도 더 피여오르는
불멸의 불덩이!

5

기미년 ≪토벌≫에 돌아가셨다는 어머니-
그렇게 기다리던 보리밥도 못받고…
어떤 때는 치받치는 어머니 생각
온 마음을 비트는 듯 조이는 듯-
≪어떻게 원쑤 갚을가!≫
꽃분이 온몸 떨었다.
꿈속에라도 잠꼬대 피하려고
혀 불어끊어 벙어리 되고
대사의 비밀을 죽음으로 감추며
고문대에 매인 채 소리없이 죽어간
그 이름모를 청년-
≪실루 그런 오빠나 있었으면!≫
꽃분이 한숨지었다.
빨찌산 남편을 천장에 감추고
놈들의 창에 찔려 죽으면서도
남편이 알면 뛰여내릴가
한마디 신음도 안낸 그 마을 아낙내-
≪아, 나도 그래리라!≫
남몰래 꽃분이 맹세했다!

6

산촌의 밤-
마을집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모지라빠진 뒤웅박 같은 두메의 삶이
누덕밑에서 어지러운 꿈자리 펴는
밤에도 4월의 한밤!
물레방아소리도 그쳤다-
마지막 물레방아소리…
굶주리는 마을을 조상하듯
밤새 개울물줄기 외로이 부여잡고
목놓아 흐느껴울던 그 소리…
그래도 두메의 외딴 오막살이 한 채엔
이 밤이 삶의 밤, 투쟁의 밤-
철호와 꽃분이
마지막 선포문 찍는다.
이제 백부만 더 찍으면 그만,
래일 아침엔 철호 떠나리
이때-
밖에서 가벼운 발자취소리-
온몸이 바늘이 돋는 듯,
보장 내린 창밖에서
수직 서던 아버지의 숨겨운 소리-
≪꽃분아! 불 꺼라!≫
캄캄한 방안,
어느새 철호는 등사기와 선포문 안고-
≪꽃분이! 뒤문 여우!≫
그러나 벌써 무거운 발자국소리 들렸다-
가슴을 으스러뜨리는 발자국소리.
심장이 골풀이치다 기절한 듯-
꽃분이 한자리에 서 있다
≪나가면 체포된다!≫-머리 속에 언뜻,
≪어쩔가?≫ 순간은 천년인 듯!

7

다음 순간…
신념과 압력에 찬 꽃분의 말-
≪철호 이불 쓰고 눕소!
아버지도 정주에!≫
어느새에 자리 펴지고
철호도 등사기도 삐라도
이불밑에 들었다.
밖에서 건방진 순사의 반말-
≪여보 령감! 자나?≫
≪……≫
≪이 두상 웬 잠을!≫
≪그게 뉘기요?≫
꽃분의 목소리 잠내 난다.
허면서도 그는 저고리 벗었다.
창문에 포장 살짝 벗기며-
≪가만 있습소… 불을 켜고…≫
≪아뿔싸, 등잔 쏟았네!≫
(등잔은 걸린 대로 있었다)
≪에그! 석유냄새야!≫
(등사유냄새였다)
빤해진 창문에 비친 그림자-
또렷이 나타난 처녀의 젖가슴
그것은 순사의 눈뿌리 뺐다.
능청스런 꽃분의 말-
≪가만 있습소… 내 옷 입고…≫
주섬주섬 방안에 흘려진 선포문
철호의 이불 속에 들었다.
≪나리님, 들어옵소≫
꽃분이 문 연다.

8

≪에잇! 냄새… 이건 누구야?≫
≪내 저의 새서방이요…≫
≪새서방? 너 시집 가?
계집년이 초저녁부터 끼고 누워…≫
≪나리님두… 초저녁이라니…≫
꽃분이 웃으며 말한다.
≪잡말 말고 두상에게 일러!
래일 아침 주재소로 오라구≫
아니꼽게 방안을 훑어보고
휙 돌아서는 순사,
그 발자취소리도 사라졌을 때
불붙는 낯을 두 손으로 막으며
꽃분이 주저앉는다
감격에 말없이 일어선 철호에게
≪아이고 참! 용서하옵소!≫
머리숙이고 부엌으로 나간다.
방안에 홀로 남은 철호
감격에 떨리는 입술로
≪꽃분동무!≫
맘속으로 부르짖고
맘속으로 합장하고, 무릎 꿇고-
≪참다운 전우여!
이 나라의 귀여운 딸이여!≫
밤은 깊어도 가누나
창문을 사이 두고
밤은 깊어깊어 한밤에 드누나…
이 한밤
철호 길 떠났다…

4

1

우등불이 밤을 태운다-
무쇠같이 장백을 내려누르는
캄캄한 밀림의 밤을!
끝없이 몰아 죄여드는 모진 어둠
머리 속에도 흑막이 드리운 듯-
허나 불길은 솟고
불꽃은 튀고
속아서는 태우고 죽고
죽고는 또 솟거니
이름모를 결사의 싸움이
이 밀림 속에 벌어진 듯.
빨찌산 우등불-
어느 때 한 번 사람이
그 불길에 두 손을 쬐였다면
어찌 줄달음치는 피 속에서
생을 읊조르는
그 기쁨이 식어질 수 있으라!
어느 때 한 번 사람이
그 불꽃튀는 소리 들었다면
어찌 그 소리소리
마음의 줄을 울리며
희망과 신념을 길이 일으키지 않으랴!
빨찌산 우등불-
그것은 집이였고 밥이였다
그것은 달콤한 잠자리였고
그것은 래일의 투쟁-
하물며 ≪토벌≫의 철망을 헤치고
사지를 육박으로 지났으니
그것은 승리의 상징,
야반의 노도 속
반작이는 구원의 등대!

2

초병들도 긴 하품에
눈시울이 아파질 무렵
빨찌산부대 깊은 잠 들다
이슬 속 고달픈 이 잠자리
몇날 만에 발 펴게 되었느고?
어제날의 상처 아직도 저리지만
나흘째나 굶주렸지만
또 앞날의 길 즐펀하지만
이 밤엔 우등불이 붙거니
깊은 잠 안식의 잠-
그런데 한 분만이 잠 못들고
우등불 옆에 비스듬히 앉아
밤가는 줄 모르네-
이런 밤엔 그이는 책을 보았다-
봄날의 아지랑인 양
희망이 멀리서 한끝 부필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불안의 구름장이 가슴가에 낮게 떠돌고
어느 구석에선가 절망이 머리 들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그러면 새 힘을 얻고 목적을 보았다.
혁대를 남비에 끓이는 냄새
주린 창자를 놀라게 할 때도
이 책을 보았고
먼 옛날 그이의 어린 시절이 흘러간
어느 때나 그리운 고향의 옛집-
다복솔에 덮인 뒤산 밑
그 쓰러져가던 옛집이
세월과 망각을 헤치고 또렷이 떠오를 때도,
또 어느 봄날 부엌에서
미음드레 가리며 함숨짓던
수심에 어린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의 쪽문을 열고 들어설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그러면 새 힘을 얻고 목적을 보았다.
이 밤에도 글줄을 밟으며
훨-훨- 걸어가는 생각-
≪우리 비록 적지만
우리 비록 굶으며 피 흘리지만
인민이 우리를 받들거던,
신세의 성벽을 영원에 뻗치며
부르이와 침략을 우리 물리치거던,
백일하에 빛나 빛나는
창조의 휘황한 성진이
백두에 퍼지여 누리에 비치노니
우리의 신념은 크나큰 화염이 되어
캄캄한 조국의 땅 밝히리라!
내 이렇게 마음조려 기다리는
식량부대도 돌아오리!
철호의 소식도 내 들으리!≫
밤새도록 어둠과 싸우던 우등불도
휴전인 양 수그러졌는데
오로지 그 옆에 앉았던 한 분만이
가볍게 일어서며
≪어! 날이 밝는구나!≫
동편 하늘은
새벽을 이룩이룩 걷어 이고
쉽사리도 일어선다, 일어선다!

3

그렇게 기다리던 식량부대
아침에야 돌아왔다-
얻은 것이란 소 두 마리뿐,
나물죽 생각만도
두 가슴을 재는 듯 파내리거니
대장도 알기 전에 소잡을 차림 서둘렀다-
씩-씩- 칼도 갈고
모닥불도 푸- 푸 피우고.
대장이 왔을 때는
모여든 빨찌산들 눈살에
소 두 마리도 어둥지둥
정신부터 잃은 듯-
목재소 일본소로는 살도 푸둥 굴레도 호함졌다.
≪소는 어디서 가져왔소?≫
대장의 묻는 말.
≪삼밭골 목재소 어구에서…≫
소대장 순선의 대답.
대장은 굴레를 보았다-
동전을 단 굴레.
수놓은 굴레… 아낙네의 솜씨
독특한 코뚜레- 민족의 이색-
어김없이 일본소는 아니다
≪동무들!
우리 빨찌산들이
어느 때부터 마적이 되었는가?
어느 때부터
평민의 재산을 로략했는가?
이 굴레를 보라-
이 소는 조선농민의 소다
저 소는 중국농민의 소다≫
이렇게 김대장이 말했다.
이것은 소를 돌려보내라는 명령
이것은 산채를 캐여
아침 하라는 명령.
빨찌산들이 산채를 듯보며
산조하듯 퍼졌을 때
살진 소 두 마리
가담가담 풀을 뜯으며
산등 타고 마을로 내려간다,
어떤 화를 지날지도 모르며
또 어떤 불행 있을지도 모르며…

4

빙- 둘러선 빨찌산들…
그 앞에 말없이 선 김대장…
머리 우에 휘도는 싸늘한 기운
가을서리 내리듯.
아침해발도 내리듯.
아침해발도 눈치채고
밀림으로 삼가 기여드는 듯-
≪뉘가 소를 죽였는가?≫
대장이 낮게 묻는다.
≪… … …≫- 군중은 잠잠
≪뉘가 소를 죽였는가?≫
낮고도 얼구는 목소리.
그래도 대답은 없었다
높다란 침묵이 잉-
빨찌산들 고막을 친다
≪사령관동지!
제가 죽였습니다…≫
한걸음 나서며 말하는
청년빨찌산 최석준.
≪네가?≫
빨찌산들이 놀란다
싸움에서도 대담한,
척후로도 이름있는 석준이…
더없는 전우라던 석준이…
≪네가 어찌?≫
빨찌산들이 더 분해한다.
새파랗게 고민에 질린
땅에 수그러진 그의 낯-
≪사령관동지도 우리도
나흘째나 굶게 되니…≫
그러나 군중 속에서 누군지-
≪응, 변명을 하는구나!≫
또 누구지-
≪너는 명령을 거역했다!≫
소대장 순선이 주먹을 들며-
≪너는 일제를 도와준다!≫
석준이 번쩍 머리 들며-
≪일제를 도와준다고?≫
석준이 번쩍 머리 들며-
≪일제를 도와준다고?≫
≪그렇다!≫
≪내가?≫
≪그렇다, 네가!≫
≪아니 내가≫
일제를 도와 준다고≫
≪그렇다 네가! 네가!≫
≪그렇다면…≫
잘칵- 총 재우는 소리
≪자, 나는 죽어 마땅하니…≫
석준이 총박죽을 내민다,
≪기척!≫- 대장의 호령소리
철판으로 밀림을 들부시는 듯
빨찌산들은 선 자리에 붙은 듯
오로지 무거운 침묵만
꽈악 뚜껑인 듯 내려누르고

5

≪가마 속의 물은 끓다가도 없어진다-
원천이 없거니-
허나 내물은 대하를 이룬다.
동무들!
우리는 대하가 되련다 바다가 되련다
우리의 근간도 민중 속에,
우리의 힘도 민중 속에 있다!
민중과 혈연을 한가지 한
빨찌산임을 우리 잊었는가?
우리 이것을 잊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민중과의 분리-
이것은 우리의 멸망,
이것은 일제들이 꾀한다
우리 이것을 모르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기척해 선 빨찌산들
쩌엉- 가슴을 가르고
치밀어솟는 의분!
≪이제도 죄책을 모르겠는가?≫
석준에게 대장이 하는 말.
≪압니다!≫ 석준의 대답.
첫서리 맞은 풀-
그것도 이것보다는 생생하리…
≪나는 죄책을 잘 압니다≫
석준의 떨리는 목소리…
재가 내여돋은 입술…
허나 이제도 처벌의 고개
어떻게 석준이 그 고개 넘으려나!
빨찌산들은 잘 안다
오직 한 가지뿐-
≪총살≫
폭풍우 전 짧은 순간…
침묵…침묵…침묵…
≪임자를 찾아 소값을 주라!≫
이렇게 명령하고
대장이 돌아선다.
새파랗던 석준의 낯에
몇 줄기 붉은 빛,
빨찌산들의 낯에도
해발이 비친다.
어떠한 커다란 충직과 신념이
빨찌산들의 가슴에 드러누워
툭-툭 어리광치듯
심장을 쥐여박는다.

6

빨찌산부대 열흘 만에
동남으로 길 떠났다,
산촌사람들도 승벽내여
식량도 걸메올리고
부상된 전사도 치료하고
소대장을 몇십 리 보내여
≪토벌대≫도 홀려가고-
허지만 밤마다 밤마다
대장은 잠 못들더니
어느날인가 약재 짊어진
로동복 입은 중로인이 왔을 때
작은 지도 대장의 손에 쥐었더니
그 이튿날 아침
동남으로 길 떠났다.
동남의 길-
앞에는 고개 뒤에 또 고개
골짜기도 많고 멀기도 하련만
어느 뉘가 괴롭다 하랴!
어느 뉘가 뒤서자 하랴!
앞으로! 앞으로!
승냥이도 추위에 얼어죽는 때
빨찌산들이 이 길을 그리였다-
그러면 새 움이 마음속에 자라났다.
나날이 주림이 모지름할 때도
빨찌산들이 이길을 그리였다-
그러면 큰 낟가리 가슴속에 자라났다,
돌아갈 길이 잡초에 막히고
마음 한바닥에 재만 무질 때도
빨찌산들이 이 길을 그리였다-
그리면 희망의 모닥불이
앞길을 가리켰다.
동남의 길-
자나깨나 그리던 이 길,
죽어도 한 번은 가겠다던
살아서 살아서 못간다면
죽어서라도 기어코 가겠다던
조국으로 가는 길, 싸움의 길-
빨찌산들이 길 떠났다
동남으로 길 떠났다.
앞으로! 앞으로! 오오! 앞에는
압록강! 압록강!

5

1

총소리 난 지도 이슥할 제
추격의 마지막 총소리-
철호 걸음 멈춘다.
심장이 악쓰며 미지의 길 달리고
목에서도 재불이 날리고-
그런데 온 삶은 청각에 올랐거니
달빛 아래 휘늘어진 수림 속
나무들만 우중충-
사방은 죽은 듯…
그때에야 껴안은 소년을
땅 우에 삼가 내리우며-
≪영남아! 영남아!≫
철호 낮게 부르짖는다.
달빛에 해쓱한 소년의 낯
괴로운 잠꼬대인 양 가느다란 신음…
가슴에서 흐르는 피
저고리섶 적신다…
옷소매 끊어 상처 싸매며-
≪영남아! 우리 가자!
우리 솔개골로 가자!≫
허나 소년은 눈 감고 말이 없다
어머니 앓는 애를 안아 일으키듯
철호 소년을 안고 일어선다.

2

이 밤은 불운의 밤-
이 밤에 마지막 보고 가지고
철호와 영남이 압록강 건느려다
일본수비대의 추격에 들었다.
이 밤은 불행의 밤-
그러나 이 살판치는 불행을
한 사람만 알고 있으니,
영남이는 정신 잃어 모르고
철호만 그 불행을 한아름 가득 안고
허둥- 지둥
밤길로 동북으로 나간다,
솔개골로 가려고…
영남이를 살리려고…
밤길-
밤길에도 산속에 밤길…
뒤에는 감옥과 죽음을 두고
앞에선 이름도 모를 위험이
고양이같이 모퉁이 지키는데
죽어가는 소년을 안고
터지는 가슴을 눅잦히며
한 걸음, 두 걸음
걸음마다 애끊어지는
산속에 밤길, 철호의 길!
이 나라의 맘있는 길손들이여,
몇 번이나 그대 이런 밤길 걸었느뇨?
그대 정녕코 철호의 길 모를 리 없거늘
맘속에라도 이곳에 오라-
이곳에 와서 철호를 도와주라,
손톱까지 적시는 땀
철호 몰래 씻어주라!
고통의 밤길, 이 밤길
어느 뉜들 그 이름이나 알리오만
그러나 이 나라에 열리고야 말
그 생의 대로에 련하여지리
아무도 모르게 이름도 없이…

3

몇 리나 걸었는지도 모른다
몇 시나 걸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하나의 생각뿐-
솔개골로 빨리 가자!
영남이를 살리자!
새벽을 잡아서
화전골 첫 어구에 들어섰을 때
영남이 정신 차렸다
그의 첫 말-
≪보고를… 보고를…≫
그담 물을 달라고…
철호는 물 얻으러 달려가고
소나무 밑 이름모를 봄풀 우에
반듯이 누워 있는 소년-
그 크다란 불타는 두 눈 부릅뜨고
검푸른 하늘 노려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두 주먹 높이 들며-
≪끝까지 싸우라!
조선독립 만세!≫
높이 부르짖었다.
이렇게 총에 맞은 갈매기
바위에 떨어져 부닥쳐도
꺾어진 나래를 퍼덕이며
생과 투쟁에 부른다,
그렇게 마지막 부르짖은 소년
다시 스르르 모으로 쓰러진다.
입술로 두 줄기 피 흘러서
풀잎에 맺힌 밤이슬에 섞인다…
눈동자에 구름장이 얼른…
바람이 우수수-
소나무를 흔든다…

4

철호 무덤을 판다,
소나무 밑에 영남의 무덤을…
파다가는 한숨 쉬고
한숨 쉬고는 또 파고…
어찌 이곳에 그를 묻을 줄 알았으리-
그 생을 즐기던 소년을,
이 나라의 강물인 양 그 맑은 마음을,
그 조국애에 끓던 심장을!
철호 무덤을 팠다-
소나무 밑에 전우의 무덤을
≪잠자라 동무야!
우리들이 우리들이
원쑤 갚으리라!≫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누런 흙에 점점이 떨어진다.
장백의 높고 낮은 고개고개에
이 무덤이 첫 무덤 아닌 줄이야
우리 어지 모르랴!
침략의 피 서린 밤이
이 나라에 칭칭 걸치였거니
새날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
헤여보라 몇 만이나 되는고?
어느 고개 어느 골짜기에
어느 나무 어느 돌 밑에
이름도 없이 그들이 묻히였노?
이 나라의 초부들이여,
부디 삼가 나무를 버이라-
우리 선렬의 령을 그 나무 고이 지키는지 어이 알리,
부디 삼가 길옆에 놓인 돌 차지 말라-
우리 선열의 해골이
그 돌 밑에 잠들었는지 어이 알리!

5

오솔길,
샘터로 올라가는 오솔길.
아침안개 휘휘 발길에 감기는 오솔길-
꽃분이 물 길으러 올라간다
올라가노라면 돌담불-
순사 왔던 그날 밤
등사기 감추어둔 돌담불…
아침이고 저녁이고
이곳을 지날 때면
밤길 떠난 철호의 모습 떠오르니…
≪시방은 어느 곳에 계신지?
떠나신 후 소식조차 없으니
무사히나 일하시는지?≫
웨 그의 모습이
날 갈수록 더 그리워질가?
웨 이리도 가슴이 안타까울가?
떠지는 걸음걸이…
무엇인지 맘속에 무겁게 처매운


돌담불을 지나면 샘치바위
진달래꽃에 불그스레한-
그 밑에는 샘터…
밤새 떠러진 꽃이 샘물을 덮었다.
꽃분이 주저앉아
두손으로 꽃잎 거둔다
한 줌 거두어 돌 우에 놓고
두 줌 거두어 돌 우에 놓고…
산란하고 들뜨는 마음
(만날 수는 있을까?)
샘물을 바라보는 처녀의 생각,
거울 같은 물 속에서
어글어글한 두 눈
수심을 낱낱이 말하는 듯-
≪에그! 내 무슨 생각을!≫
낯을 붉히는 처녀.
세 번째 줌 거두어 돌 우에 놓으려다
처녀 놀라 멈춘다-
바위 옆에 그가 섰어라!
≪철호!≫-처녀의 부르짖음
놀라움과 기쁨에 섞인.
쥐였던 꽃뭉치 우수수 떨어져
샘물을 다시 덮는다…
그러나 기진하고 어이없는 철호의 낯
꽃분의 숨결을 막는다-
≪무슨 일에?≫
≪간밤에 영남이 죽었수…≫
≪영남이? 아이구 기차기두!…≫
처녀의 심장 옆에서
무거운 아픔이
꿈틀 돌아눕는다
또 돌아눕는다…
한시 후에 철호 떠나고
꽃분이도 길 떠났다,
H시로 간다고,
전에 없이 꽃 팔러 간다고
진달래꽃 한임 이고.
몇몇 해 정성껏 자래우던
샘터 진달래도 모조리 뜯어
한떨기도 남기지 않고…

6

1

이 나라 북변의 장강-
칠백 리 압록강 푸른 물에
저녁해 비꼈는데
황혼을 담아 싣고
떼목이 내린다 떼목이 내린다.
뉘의 눈물겨운 이야기
떼목 우의 초막에 깃들었느냐?
뉘의 한많은 평생 모닥불에 타서
한줄기 연기로 없어지느냐?
≪물피리 불며 울며 구을러 갈 제
강 건너 천리길을 이미 떠난 몸
재 넘어 천리길을 이미 떠난 몸
재 넘어 구름 따라 끝없이 간다
에헹 에헤요 끝없이 가요≫
웨 저노래 저다지 슬프단 말가,
이 땅의 청청 밀림 찍어내리거니
그 노래 어이 슬프지 않으랴!
이 나라의 집집은
대들보 터지고 기둥이 썩어져도
그 미끈한 만년대목으로는
놈들이 향락의 향연 베플거니
그 노래 어이 슬프지 않으리!

2

황혼도 깊어지고
물결도 차지고
서늘한 밤바람
강가에 감돌아돌 무렵
강 건너 바위 밑에서 휘-익
휘파람소리 나더니
떼목에서도 모닥불이 번뜩번뜩
내려가던 떼목이 돌아간다 돌아간다
머리는 저편 강가에
꼬리는 이편 강가에-
삽시간에 이루어진 떼목자리,
초막에서 나온 두 사람
나는 듯 이편으로 달아온다
한 사람은 떼목군
다른 사람은 떼목군
다른 사람은 철호,
그담 강 저편 바위 밑에서
군인들이 달아나온다
달아나와선 떼목으로
압록강을 건너온다-
빨찌산부대 압록강을 건너온다.
산밑에 그들이 숨었을 때
그 때목다리도 간데 없고
출렁-처절썩-
찬 물결만 강가에 깨여지는데
멀리선-
≪띄우리라 띄우리라
배를 무어 띄우리라
떼를 무어 띄우리라!≫

3

빨찌산들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일제가 짓밟은 이 땅에
살아서 살 곳 없고
죽어서 누울 곳 없고
모두 다 잃고 빼앗겼으니
물어보자 동포여!
가슴 꺼지는 한숨으로
이 강 건너 이방의 거친 땅에
거지의 서러운 첫걸음 옮기던 그날-
그날부터 몇몇 해 지났느뇨?
강 우에 밤안개 젖은 안개 떠돈다-
이 강 넘은 백성의 한숨이나 아닌가
물줄기는 솟아서 부서지고 또 부수지고-
이 강 넘은 백성의 눈물이나 아닌가
오오- 압록강! 압록강!
허나 오늘밤엔 그대 날뛰라
격랑을 일으켜
쾅-쾅 강산을 우리라.
이 나라의 빨찌산들이
해방전의 불길을 뿌리려
그대를 넘어왔다-
애국의 심장을 태워 앞길 밝히며
의지를 갈아 창검으로 높이 들고
이 나라의 렬사들이
조국땅에 넘어섰다.
압록강! 압록강!
격랑을 치여들고
쾅-쾅- 강산을 울리라!
거창한 가슴을 한 것 들먹이며
와-와- 격전을 부르짖으라!

4

골짜기에 끼여우는 H시에
밤 열한 시…
고로에 먼지 찬 하루나절 지났다고
시민들도 잠자리에 들고
서로 다투고 서로 속이던
가가들도 문 걷어닫고
늦도록 료리집에서 야지러지던
매춘부의 웃음도 끊어지고
소경의 곯아빠진 눈자위같이
그 창문도 어둑해지고
거리를 휩슬며
≪구사쯔요이또꼬≫부르던 놈도
이층집 문을 차며
≪요보야로!≫욕하다 들어가버리고…
밤 열한 시…
영림창 뒤통
빈민굴 어느 구석에선가
떼목에 치여 죽었다는 사나이를
거적에 싸서 방구석에 놓고
온 저녁 목놓아 울던 녀인의 사설도 끊치고
오뉴월 북어인 양 벌거숭이 애들
뼈만 남은 젊은이들
꼬부라진 늙은이들-
모두 다 웅크리고 노그라져
쿨-쿨- 잠들어버린
밤 열한 시…

5

밤 열한 시…
거리엔 인적이 끊치고
전등만 누렇게 흐르고-
주재소 교번순사도
꺼덕꺼덕 조을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남녀 두 사람
주재소 문간에 나타났다-
녀인은 사나이를 끌고
사나이는 녀인에게 끌리우고.
≪이연석 들어가자!≫
녀인의 짜증내는 소리
≪하…어…찌…라…고…≫
사나이의 혀 까부라진 소리
≪웬일이야!≫순사 골낸다
들어선 남녀를 흘기며
≪나리님 저놈이 술값을…≫
≪허… 내 우스워서…
허허허… 나리님두 우습지?≫
≪이놈 어딘 줄 알고 웃어?
내 앞에서 감히 웃어?≫
순사 단걸음에 다가서며
주먹을 쳐들자
그놈의 가슴에 총부리 대인다.
소리도 못치고 두 눈 뒤집고
순사 방구석에 까무러질 제
녀인은(그는 솔개골 꽃분이)
전신줄을 끊고
사나이는(그는 정치공작원 철호)
문 열고 손짓한다
문 열고 손짓하자-
바로 곁에서 신호의 총성
잠든 시가를 깨뜨린다
그담 련이어 나는 총소리 총소리…
우편국에서도 총소리,
은행에서도 영림창에서도
어지러운 점선을 그으는
따-따-따-따- 기관총소리
쾅-쾅- 폭탄 치는 소리!

6

적은 반향도 못하고
죽고 도망치고-
류치장 지붕에선
삼단 같은 불길이 일어난다,
이곳저곳 관사에서도
놈들 집에서도
반역자들 집에서도
불길이 일어난다,
캄캄한 하늘을 산산이 윽물어 찢어
쪼박쪼박 태워버리며 불길이 일더니
만세소리 터진다
첨에는 몇 곳에서
다음에는 여기저기서-
눌리우고 짓밟힌 이 거리에
반항의 함성 뒤울리거니
암담한 이 거리에 투쟁의 불길 세차거니
흰옷 입은 무리 쓸어나온다-
머리벗은 로인도 발벗은 녀인도
벌거숭이 애들도.
절망이 잦아든 이 거리에
별천지의 화원인 양 화해에
불꽃이 나붓기고
재생의 열망을 휘끗어올리며
화광이 춤추는데
밤바다같이 웅실거리는 군중
높이 올라서 칼 짚고 웨치는
절세의 영웅 김일성장군!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
조선은 죽지 않았다!
조선의 정신은 살았다!
조선의 심장도 살았다!
불을 지르라-
원쑤의 머리에 불을 지르라!≫
만세소리 집도 거리도 떨치고
화염을 따라 오르고 올라
이 나라의 컴컴한 야공을
뒤흔든다 뒤울린다!

7

휘황한 불빛이 온 거리에 차 흐르는데
떨어지는 불꽃을 밟으며
혁명가 드높이 부르며
빨찌산부대 거리를 떠난다.
그들을 전송하는 이 고장 사람들-
기막힌 이 거리에
한줄기 생의 빛 가져왔으니
≪잘 가라 영웅들이여
어느 때나 승리하라≫
그러나 그들이 떠나면
또 검은 거리, 눈물의 거리,
그러기에 울음으로 전송하누나-
≪잘 가라 영웅들이여
언제나 다시 만나리≫
뺨에서 흐르는 눈물
불빛에 피방울인 듯,
허지만 빨찌산들의 부르짖음-
≪잘 있으라 동포여,
싸우라 동포여!
우리 다시 만나자
해방연에 독립연에 다시 만나자!≫
휘황한 불빛에 쌔워
빨찌산들이 어둠을 직차며 뚫으며
처억처억 앞으로 나간다,
싸움의 길로-
처억-
처억-
처억-

7

1

밤은 밑바닥도 없이 깊어가는데
높은 산 깊은 골 지나
빨찌산들이 압록에 이르다
뜻 깊고 한 많은 이 물결을
빨찌산들이 또다시 건느련다.
그러나 이 길은
가슴 터지는 추방의 길이 아니다
이 길은 승리의 길, 복수의 길-
허기에 압록도 기쁘게 중얼거리며
떼목을 몰아 강가에 붙이고는
밤을 헤치며 늠실늠실
대해로 흘러 흐르누나.
빨찌산들이
떼목다리 놓으려 할 제
어디선가 총소리, 불의의 총소리,
산비탈 어둠 속에서
미친 듯 짖는 기관총소리-
이것은 ≪토벌대≫의 추격!
앞에는 밤안개 자욱한 대하
뒤에는 적군-
≪포위?≫≪포위!≫-번개치는 생각-
누군지 왈칵 물에 뛰여든다
또 누군지 뛰여든다.
≪땅-땅-≫
반쩍 싸창을 드는 김대장-
≪명령을 들으라!≫
아무 기척도 안 내는 변절자 두놈-
어둠과 물결은
수치의 두 시체 삼켜버렸다.

2

철호를 후위대장으로 삼고
전군은 항전을 베풀어
반격전이 밤을 달구는데
한 분대 데리고
떼목에 뛰여오른 김대장!
탄환은 죽음의 비명을 지르며
물결 우에 여기저기 박히는데
하나씩- 둘씩
떼목을 이어놓은 김대장!
결사의 몇 분이 지나자
떼목이 건너간다
구원의 저편으로 떼목이 건너간다,
후위대를 방패로 삼아
안개 속에 본대 강 건넜을 제
적은 머리 들어
어두운 산비탈은
억척한 분화구같이 철화를 내여뿜는데
본대 내리우는 탄막에 숨어
퇴진하는 후위대의 마지막 전사-
그는 철호
그의 옆엔 최석준-
사격하며 떼목에 오른다
바로 그때-
철호 말없이 넘어진다
어디선가 떼-엥-(철호의 생각)
≪무슨 소리 나는가?
웨 이리도 어두워지는가?≫
철호 그만 정신 잃는다…
……

3

몇 보 앞 안개 속에서
발악의 돌격소리 날 제
철호 다시 정신 차리고
온 삶을 한 팔에 쏭겨
수류탄을 뿌린다-
꽝- 놈들의 아우성…
또 뿌린다
꽝- 놈들의 아우성…
폭발에 끊어진 떼목
쭈욱 량편으로 갈라진다
그제야 철호 석준이를 보았다-
부러진 총가목을 특어쥔 채
떼목 우에 쓰러진 석준이를…
그 옆엔 뒤여진 놈들의 시체.
철호 마지막 힘 다잡고서
석준이를 안고 일어선다-
몇 걸음 앞으로…
그만 거꾸러진다.
또다시 일어났을 때도
전우의 시체 안고
몇 걸음 앞으로…
서슴없이 내걷는다.
허다가 철호 그만 우뚝 선다-
불의의 류탄이
전사의 심장을 꿰였다…
≪아하!≫우뚝 섰다가
앞으로 거꾸러져…
창- 처절썩-
물결이 두 전사를 감춘다
압록강 찬 물결이…

4

실망한 적도
머슥히 사격을 멈추고
떼목도 강가에 붙을 무렵
강변에서 녀자의 부르는 소리-
≪철-호-석-준-이-≫
꽃분의 목소리였다.
≪철-호-철-호-≫
분명히 김대장의 목소리.
허나… 대답은 없었다
물결만 분풀이하듯이
떼목을 창-창- 걷어차며
날뛴다 몸부림친다.
≪철-호-석-준-이-≫
처녀의 애타는 부르짖음
그래도… 대답은 없었다…
압록강만 한가슴 두드리며
어둠 속에서
쾅- 처절썩- 쾅-

5

산마루 바위에 선 빨찌산들-
김대장이 서고
순선이도 서고
꽃분이도 서고
전사들도 모두 서고…
누구누구 이 대렬에 없느냐?
누구의 자리 비였느냐?
철호 없었다!
석준이 없었다!
≪토벌대≫의 총소리 은은한
컴컴한 조국땅을
분노에 타는 두 눈으로
빨찌산들이 바라본다
≪동무들!≫
김대장의 떨리는 목소리-
≪몇몇 해 우리 이방에서 싸우다가
새도 날 틈 없는 수비망을 무찌르고
오늘밤 조국땅에서
원쑤를 우리 족쳤다
피마르는 동포에게
살고 있는 이 나라의 기개를
우리 떳떳이 보였다.
그러나 동무들!
적은 아직도 강하다
때문에 우리 오늘밤
압록강을 두 번 다시 건너게 되었고
우리의 전우들을
철호와 석준이를
시체도 못 찾고
한 많은 이 압록강 물결에
영영 묻게 되지 않았는가?≫
김대장의 목메인 말끝,
누군지 주먹으로 눈물 씻는다
꽃분이 느껴우는 소리…

6

≪그러나 동무들!≫
대장의 말소리 강철을 울린다.
≪우리 비록
작은 거리를 쳤지만
그 거리에 일으킨 불길은
죽어가는 민족의 가슴에
투쟁의 불꽃을 떨구었다!
우리 비록
오늘은 한 거리를 치고 가지만
우리 기어코 오리라!
조선아! 조선아!≫
김대장이 맹세의 칼 높이 든다
전사들도 삼대같이 총을 든다
≪조선아! 우리 오리라!
인민이 살아 있거든
우리의 힘은 크다!
정의의 검이
침략의 목 우에 내려지리라!
불의를 소탕하리라!
우리 애국의 기개를 살려
해방투쟁의 불길을 높이리라!
빨찌산들아!
결사의 혈전을 위하여
사격-≫
례총소리 산하를 떨친다
≪빨찌산들아!
우리 선렬의 령을 위하여
사격-≫
례총소리 산하를 떨친다
≪조선아! 조선아!
너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너의 민주 행복을 위하여
사격 사격-≫
례총소리 산하를 떨친다!
삼천리를 떨친다!

맺음시

동방의 줄기줄기를
선축인 양 한줌에 걷어쥐고
만리창공에 백발을 휘발리며
아득한 태고로부터
이 나라 풍상의 나날을 낱낱이 굽어
천산성악아, 백두산아!
오늘은 이 땅에 날이 밝아
오늘은 너의 천지에 채운이 서리우고
오늘은 너의 머리 우에
창창한 대공이 열렸거니
너, 백두야! 조선의 산아 말하라-
어떻게 떨어졌던 태양이
이 나라에 솟았느냐?
떨어졌던 태양이 다시 솟는 그때
네 누구를 맞이했느냐?

세기의 백발을 휘날리며
백두산은 대답한다-
≪여봐라!
내 말하노니 들으라!
두만강 물결이
포격에 솟아 구름을 헤치고
준령에 올라선 항일빨찌산-
치명의 철화를 일제에게 내뿜을 때
떨어졌던 태양이
이 나라에 다시 솟았다!
내 머리 황홀한 흰빛에 휩싸이고
내 가슴속 갈피에서
푸른 기류 회오리쳐 일 제
내 그때-
동서에서 침략을 뒤부신,
온 누리에 빛을 준,
포연탄 우를 지나온
만고의 빨찌산을 맞이했다.
내 그때-
이 나라 백성이 그렇게 그리던
나의 참된 아들-
나의 량심이고 나의 의지인
나의 신념이고 나의 희망인
나의 빨찌산 김대장을 맞이했다
순선이도 꽃분이도 맞이했다.
내 그때-
골짜기와 골짜기, 집과 집,
거리와 거리, 광장과 광장들이
서로 읽히고 뭉치여 부둥켜안고
뛰고 춤추고 울고 노래부를 제,
자유의 기발, 만세소리, 환호소리로
넘치는 감격, 타오르는 애국의 백열로
하이얀 바다같이 뒤끓어흐를 제
나도 만고에 없는 큰 숨으로
눌리웠던 허파에 대기를 한껏 들이그어
이 땅의 해방을 부르짓었다!
나의 영생을 부르짓었다!≫

그러면 너 백두야
조선의 산아 말하라!
오늘은 무엇을 보느냐?
오늘은 누구를 보느냐?
세기의 백발을 휘날리며
백두산은 대답한다-
≪오늘은
무럭무럭 굴뚝에서 솟는
창조의 타는 로력을 본다
풍작에 우거진 자유의 전야를 본다.
력사의 대로에 거세게 올라선,
비약의 나래를 펼친
민주의 새 조선을 본다
오늘은
독립의 터를 닦는 인민을 본다
민전의 선두에 선 김대장을 본다.
오늘은
푸른 이념을 함빡 걷어안고
빛니는 민주 미래를 받들며
자라자라나는 인민의 바위-
모란봉을 본다!
또 저 삼각산 밑에서
반동의 무리 뒤엉켜 욱실거리여도
테로의 미친 눈이 백주에 희번덕이여도
민전의 싱싱한 웨침에
남산 송백도 더 푸르러 빛나는 것을
내 오늘 력력히 본다≫

백두산은 이렇게 말하면서
의분을 못참는 듯
장군봉에서 한 줄기 회오리바람을 휘잡아들어
채광이 어린 천지에 내려뿌린다.
허자 천지는 한가슴을 뒤집어내치며
하늘을 삼킬 듯 격파를 일으켜
바위를 치며 절벽을 들수신다!
천심을 울린다 지축을 떨친다!
세기의 백발을 추켜들고
북으로 찬란한 우랄산을 바라보며
곤륜산 히마라야산 넘에
신생의 중국도 살펴보며
증오에 찬 추상을
태평양 거친 무과 부사산에 던지며
백두는 웨친다-
≪너, 세계야 들으라!
이 땅에 내 나라를 세우리라!
내 천만 년 깎아세운 절벽의 의지로
내 세세로 모은 힘 가다듬어
온갖 불의를 즉쳐부시고
내 나라를,
민주의 나라를 세우리라!
내 뿌리와 같이 깊으게
내 바위와 같이 튼튼케
내 절정과 같이 높으게
내 천지와 같이 빛나게
세우리라-
자유의 나라!
독립의 나라!
인민의 나라!≫
백두산은 이렇게 웨친다!
백성은 이렇게 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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