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사랑의 노래》의 창작과정

《인민사랑의 노래》의 창작과정

2023.02.1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의 애국의 마음에는 언제나 인민이라는 두글자가 꽉 차있었습니다. 인민이 바란다면 하늘의 별도 따오고 돌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는것이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신 인민사랑의 숭고한 뜻이고 의지였습니다.》

주체99(2010)년 9월 23일 《로동신문》 4면에 실린 한편의 노래가사와 악보가 사람들의 마음을 틀어잡았다.

새로 창작된 노래 《인민사랑의 노래》였다.

허나 그 노래에서 사람들은 귀익은 물으심을 들었다.

인민들 좋아하는가, 인민들 기뻐하는가.

흘러온 나날 우리 생활의 갈피갈피에 깃든 위대한 장군님의 정깊은 물으심이 그대로 울려오는 새 노래는 순간에 우리 인민의 심장을 틀어잡았다.

노래가 나온 때로부터 10여년간 이 노래는 공화국의 그 어디서나 울리였고 누구나 불렀다.

절세위인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명곡은 어떻게 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는지.

이 노래는 김일성상계관인인 윤두근작가가 가사를 창작하고 로력영웅이며 인민예술가인 안정호작곡가가 작곡을 하였다.

처음 노래가 나왔을 때 우리 인민은 제목밑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면서 관록있고 명성높은 창작가들이 지은 가요가 역시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허나 그들은 말하였다. 이 노래는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사랑의 직접적체험자들인 인민들이 창작한것이라고.

지난 기간 노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장군님 찬눈길 걷지 마시라》를 비롯하여 위대한 수령님들을 우러러 터친 인민의 진정을 가사에 담은 윤두근작가에게는 우리 장군님의 한생에 대한 노래를 훌륭하게 짓고싶은 소원이 있었다.

그러나 인민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한평생을,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불멸의 업적을 단 몇개절에 담는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였다.

모자라는 능력을 두고 가슴치면서 안타까이 모대기던 그때 작가는 자신의 한생을 쥐여짜면 인민이라는 두글자밖에 남는것이 없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받아안게 되였다.

심장이 끓었다. 드디여 종자를 잡은 작가의 가슴에 격정이 물결쳤다.

이 종자를 꽃피우기 위해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던 그에게는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관람하던 그날의 영광이 되새겨졌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군인가족들이 준비한 진실하면서도 소박한 공연을 보시면서 한달전에 진행하신 외국방문의 나날 조국에 두고온 사랑하는 인민을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는데 대해 이야기하시였다.

작가는 그만 목이 꽉 메였다.

조국땅 방방곡곡을 현지지도하실 때면 만나본 인민들생각으로 잠 못 드시던 우리 장군님께서 조국을 떠나시여서는 또 두고온 인민들생각으로 잠 못 드시였구나 하는 생각이 눈물젖은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 격정이 《온 나라 다녀오시면 만나본 인민들생각 먼 나라 찾아가시면 두고온 인민들생각》이라는 2절의 첫 구절을 낳았다.

노래의 2절부터 완성한 후 1절 가사창작을 위해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자욱이 새겨진 수많은 단위들을 찾는 길에서 작가의 생각은 깊어졌다.

초소와 일터는 서로 달라도 찾으시는 곳마다에서 우리 장군님 하신 첫 물으심은 언제나 인민이 좋아하는가, 인민이 기뻐하는가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십년전 풍산군(당시)의 자그마한 읍상점을 찾으시였을 때에도 들쭉을 가지고 만든 식료품이 몇가지나 되며 인민들이 그것을 좋아하는가고 물으시였고 새로 일떠선 어느 한 문화주택들을 돌아보시면서는 집을 잘 지었다고, 방안도 좋고 부엌도 멋있다고, 그런데 문제는 인민들이 좋아하는가 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인민들이 좋아하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지방의 공업품상점을 찾으시여서는 잡화매대를 따로 내오니 인민들이 좋아하는가, 상품들을 떨구지 않고 판매하는가, 주민들이 어떤 문수의 신발을 많이 요구하는가, 인민들이 좋아하는가고 거듭 물으시던 우리 장군님.

진정 인민의 리익때문에 기뻐도 하고 노여워도 하시며 인민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평가기준으로 삼으신 우리 장군님이시여서 한평생 남기신 그 물으심을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12월에 찾으시였던 개선청년공원유희장에도 남기시였다.

하기에 뜻깊은 그 물으심에서 작가는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사랑, 인민의 요구와 리익을 언제나 첫자리에 놓으시는 숭고한 인민관을 뜨겁게 새겨안았고 그것을 그대로 1절가사로 창작하였다.

이렇듯 가요 《인민사랑의 노래》는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사랑을 사무치게 절감한 인민의 뜨거운 체험속에서 태여나게 되였다.

인민이 잊지 못하는 우리 장군님의 첫 물으심, 인민이 안겨산 우리 장군님의 마음 첫자리에 대한 서정이 그대로 가사가 되고 선률이 된 이 노래의 창작과정을 더듬는 우리의 마음속에 잊을수 없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교시가 되새겨진다.

인민들이 좋아하는가.

이 물으심은 수십년전 구름도 쉬여넘는다는 후치령의 아흔아홉굽이를 넘으시여 풍산군(당시)의 자그마한 읍상점을 찾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들쭉을 가지고 만든 식료품이 몇가지나 되며 인민들이 그것을 좋아하는가고 물으시던 식료품매대에서 오늘도 울리고있다.

그 물으심은 새로 일떠선 어느한 문화주택들을 돌아보신 우리 장군님께서 집을 잘 지었습니다, 방안도 좋고 부엌도 멋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민들이 좋아하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래 어떻습니까, 인민들이 좋아합니까라는 물으심을 받아안은 일군들의 추억속에서 오늘도 울리고있다.

진정 인민의 리익때문에 기뻐도 하시고 노여워도 하시며 인민들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평가기준으로 삼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우리 일터, 우리 사는 마을, 이 땅 그 어데서나 울리는 그 물으심을 오늘도 인민은 듣고있다.

인민의 생명안전과 행복을 위해 바치신 자신의 헌신과 로고는 다 잊으신듯 훌륭히 일떠선 사회주의선경마을들과 현대적으로 건설된 경공업공장들을 보시며 인민들이 좋아하는가고 거듭 문의하시고 그들모두가 좋아한다니 더 바랄것이 없다고 그처럼 기뻐하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말씀에서 우리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의 정깊은 물으심을 또다시 들었다.

인민이 좋아한다면 분명 우리 당이 잘한 일이라고 그처럼 기뻐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모습에서 우리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을 뵈오며 이 땅에 변함없이 이어지는 위대한 인민사랑을 다시금 가슴뜨겁게 절감하였다.

진정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사랑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모시여 인민이라는 두 글자에 비낀 우리 장군님의 한생의 업적은 세월과 더불어 영원히 빛날것이다.

이것이 인민의 체험속에서 태여난 명곡 《인민사랑의 노래》의 창작과정을 되새겨보는 천만의 가슴속에 더욱 억척같이 다져지는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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