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자공예가의 추억

한 도자공예가의 추억

《로동신문》2023.12.22

첫 대면에 무척 소박하게 느껴지는 로인이였다.장구한 력사의 이끼속에 묻혀있던 알룩반죽자기제조술을 재창조하여 사람들로부터 흔히 《도자기박사》로 불리우는 청진시 수남구역 추목동 78인민반의 유관준로인, 그의 나이는 올해 72살이다.

우리는 로인과 인사를 나누며 정결하게 꾸려진 아늑한 방안을 둘러보았다.방안 한쪽벽면에 걸려있는 비물질문화유산등록증이 눈에 띄였다.

등록증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유관준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저 등록증을 볼 때면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군 합니다.꽃도 해빛과 자양이 있어 활짝 피는것처럼 재능도 키워주고 보살펴주는 품이 있어야 꽃필수 있는것입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입니다.》

함경북도의 어느한 바다가마을에서 평범한 로동자의 아들로 태여난 유관준로인은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던 그가 도자기와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된것은 경성군의 한 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도자기전시회에 참가한 때부터였다.정교하고 우아한 하나하나의 도자기들은 10대의 유관준을 대번에 그 세계에 완전히 심취되게 만들었고 가슴속에 유명한 도자공예가가 될 꿈을 간직하게 하였다.

중학교졸업후 주을도자기공장(당시)에서 사회생활의 첫 발자욱을 내짚은 그는 낮에는 현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군미술소조와 이름난 미술가들에게서 조선화법을 비롯한 여러 미술기법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한 청년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꿈을 지켜주고 빛내여준것은 고마운 집단과 우리 제도였다.

오랜 기능공들은 그가 하루빨리 도자공예기술을 터득하도록 하기 위해 시간을 아끼지 않았고 공장일군들은 평양출장길에서 돌아올 때면 력사도서들이 가득 들어찬 배낭을 안겨주군 하였다.

그가 24살이 되던 해 전국적인 도자공예수출견본품현상응모에서 특등으로 당선되였을 때 공장일군들과 로동자들은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후 유관준로인은 경공업과학원 도자기연구소(당시)에서 일하게 되였고 평양미술대학에서 통신수업도 받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유관준로인은 우리 나라 도자기발전력사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연구하는 과정에 고려시기 존재한 알룩반죽자기에 대해 알게 되였다.

도서들에 간단한 글과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알룩반죽자기, 력사의 흐름속에 자취를 감추었던 알룩반죽자기는 특이한 제조술로 만들어진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였다.

그런 민족의 재보가 도서들의 글줄로만 남아있다는 사실은 도자공예를 지향하는 20대청년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그는 마침내 알룩반죽자기를 만들어낼 결심을 하게 되였다.

통신수업을 마치고 연구소에 돌아온 그는 알룩반죽자기제조술을 완성하기 위한 탐구에 혼심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결심과 실천사이에는 너무나도 먼 거리가 있었다.

기초적인 문헌도 미약하고 사진 몇장밖에 없는 알룩반죽자기를 내놓기 위해 고심참담한 나날을 보내는 그를 두고 일부 사람들은 도리머리를 흔들기도 하였다.하지만 유관준로인은 동요를 이겨내며 알룩반죽자기창조에 온 정력을 쏟아부었다.

바로 이러한 때 그에게 어머니당의 따사로운 사랑이 해빛처럼 비쳐들었다.

당에서는 그가 재능의 나래를 한껏 펼칠수 있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었고 창작사업에 필요한 온갖 조치들을 취해주었다.

그 사랑, 그 믿음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유관준로인은 고난의 시기에도 알룩반죽자기와 관련한 연구와 제조방법에 대한 실험을 중단없이 진행하였다.이런 사색과 탐구의 낮과 밤이 흐르는 속에 유관준로인은 첫 알룩반죽자기를 완성하고 제조술을 더욱 발전시키게 되였다.

한 도자공예가의 애국심을 귀중히 여기여 당에서는 그가 창작한 도자기들을 국가소장품으로 조선미술박물관에 보존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었다.

그뿐이 아니였다.

유관준로인이 도자기창작과 연구에서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하여 전국지식인대회에 참가하도록 해주었고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도 안겨주었다.그 사랑에 보답할 일념으로 유관준로인은 창작활동을 줄기차게 벌려 다양한 형태의 알룩반죽자기들을 수많이 창작하였으며 알룩반죽자기제조술이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되게 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되였다.

우리 인민이 창조한 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한생을 바쳐온 유관준로인의 참된 애국의 넋은 오늘 그의 자식들에 의해 련면히 이어지고있다.

유관준로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저의 재능이 오늘처럼 꽃피여나고 우리 가정이 도자공예가일가로 불리우게 된것은 고마운 어머니당의 품이 있었기때문입니다.그 은덕에 충성으로 보답하는 길에 저의 한생을 깡그리 바쳐가겠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민족의 문화유산-알룩반죽자기,

정녕 거기에 어찌 한 인간의 순수한 창작적재능과 열정만 깃들어있는것이랴.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적극 보호하고 계승발전시키는 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고 현명하게 령도하는 우리 당의 품속에서 또 하나의 민족의 재보가 다시 태여나 빛을 뿌리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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