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가극 《사이다마 야끼또리가게 이야기》가 대성황

《조선신보》 2018.01.30


출연자 130여명, 관람자수 1,000여명/3년의 세월 거쳐 드디여 상연

대절찬을 받은 동포가극의 한장면

1월 28일, 彩노国사이다마芸術劇場 대홀에서 동포가극 《사이다마 야끼또리가게 이야기》가 상연되였다.

사이다마초중 채리티로 진행된 공연을 총련중앙 배익주부의장, 김성훈 선전문화국장, 송근학 교육국장, 서충언 국제통일국장, 총련사이다마현본부 신민호위원장, 총련도꾜도본부 조일연위원장, 문예동중앙 김정수위원장과 문예동 각 지부 위원장들, 조청중앙 김용주위원장, 동포들과 학생들 약 1,000명이 관람하였다.

이번 공연은 대본작성으로부터 작사, 작곡, 연출, 지휘, 안무, 무대미술, 기술지도에 이르기까지 동포들의 창작적열의를 한데 모아 이루어진것이다. 무려 3년간의 준비를 거쳐 무대에 오른 가극의 출연자수는 10살부터 71살까지 130여명.

공연실행위원장을 맡은 주홍문씨(63)는 《사이다마에서는 2006년에 문예애호가들의 협의회 〈얼싸〉를 발족하여 무용, 성악, 악단 연목을 배합한 안삼블공연을 2년에 1번씩 기획해왔는바 이번 동포가극은 새로운 도전이다. 실행위원들과 여러번 토론을 하고 취재도 하면서 동포들과 함께 이 작품을 만들어왔다.》고 말하였다.

작품의 무대는 1990년대 후반의 사이다마현 히가시마쯔야마시(東松山市).

단골손님들로 흥성거리는 야끼또리가게 《옹헤야》에는 사이다마초중 1학년생이 된 영희가 있다. 녀주인인 봉순은 일찌기 남편을 잃고 시아버지와 함께 가게를 경영하면서 어린 영희를 키우고있다. 영희가 학교까지 통학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어느날 함께 등교하던 중학생 언니가 통학길에 치마저고리를 찢기는 사건이 발생하여 겁먹은 영희는 먼거리 통학길이 무서워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눈물을 흘린다.

출연자의 한사람인 정련희씨는 《이 가극은 우리들의 생활을 그대로 표현한것》이라고 말하면서 지난 관통련습날에 71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때 출연자모두가 축하해주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 학교 출신자들이 많은 속에서 일본학교를 나온 내가 우리 말로 연기를 잘할수 있을가 걱정했지만 이번 공연이 학교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보람차고 기쁘기만 하였다. 나는 우리 교육을 못받았지만 딸과 사위, 손자들이 우리 학교를 다닌것이 나의 자랑이다.》고 말을 이었다.

전문예술가가 아닌 일반동포들이 연기, 악단, 무용, 방창 련습을 제대로 보장하여 동포가극을 완성하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친구, 지인, 부모, 형제의 출연에 열광하는 동포들

실행위원을 맡은 김주옥씨(54살, 방창단)는 《월 한번 실행위원들이 꼭꼭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야끼또리가게〉 문을 활짝 열기는 했는데 도중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작년 가을에는 김경화지휘자(인민예술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그 뒤에 손동훈지휘자가 우리 공연의 작곡과 편곡, 지휘를 맡아 악단과 방창을 이끌어주었다. 새 연출가 문옥선씨의 공로도 크다.》고 말하였다.

더운 날도 추운 날도 학교 체육관에 모여서 련습에 땀을 흘려온 출연자들. 그들의 로고를 알아선가 공연 입장권은 사전에 매진되였으며 당일은 개장 2시간 전부터 눈덮인 극장문밖에 개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공연을 관람한 정민효씨(51살, 니시도꾜)는 《예상보다 몇배나 좋은 공연이여서 감동했다. 이 공연을 한번만 해서 끝내는것이 아깝다. 꼭 전국순회를 해주었으면 한다.》고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조경희씨(69살, 사이다마)는 《공연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들이 고생하던 생각이 많이 났다. 1세들의 마음이 잘 안겨왔다》고 말하였고 강정희씨(69살, 도꾜)는 《사이다마동포들의 힘이 여실히 느껴졌다. 학생, 동포들이 다 합심해서 출연자와 관객들이 하나가 된 매우 감동적인 공연이였다.》고 감상을 말하였다.

또한 3개월과 2살 되는 손자와 딸을 데리고 극장에 찾아온 《사이다마 야끼또리가게 이야기》의 모델인 배정희씨(63살)는 《사전에 취재를 받기는 했는데 훌륭한 공연이였다. 나는 초급부 2학년부터 사이다마초중에 다니고 조선대학교까지 졸업했다. 조선에서 건너온 아버지는 로상가게(屋台)부터 시작해서 야끼또리가게 하나로 나를 키우셨다. 아버지는 일찍 가셨지만 나도 아이도 손자들도 모두 야끼또리로 자라났다. 히가시마쯔야마에서 1시간 반 들여서 씩씩하게 우리 학교에 다니고있다.》고 말하였다.

(글 김윤순, 사진 강영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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