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 명고수와 명무가들

량 상 호 와  김 현 영

1925년 12월 30일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에서 출생한 량상호는 어린시절부터 명고수로 이름난 할아버지에게서 장단과 춤을 배웠다.

마을에서 서당에 다니다가 보통학교과정을 마친 그는 공부를 너무나도 잘하여 《신동》이란 별명까지 붙게 되였다.

그러나 생활이 너무나도 어려워 16살 되던 해에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일제의 강제징집에 걸려 《개척단》에 끌려가 건설로동과 농업로동으로 고역에  시달렸다.

광복후 동북지방의 한 전투부대에서 예술선전대원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경에 조국에 돌아와 조선인민군협주단에 입대하여 무용배우로, 고수로 수많은 작품들에 출연하였다.

1950년 12월부터 중국의 연변가무단에서 안무가로 여러 무용작품을 창작하였다.

1965년 10월에 귀국하여 평안북도예술단의 안무가로 근무하면서 많은 무용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후 평안북도 신의주예술학원에서 수많은 후비들을 양성하였다.

이 기간에 조선무용가동맹 중앙위원회가 조직한 여러차례의 민족무용과 장단강의들에 출연하였으며 민속무용과 타악놀이에도 출연하였다.

그는 현재 평안북도안의 여러 협동농장들과 공장, 기업소들에 나가 조선음악장단을 배워주면서 인생의 로년기를 보람있게 보내고있다.

 1930년 5월 16일 평양에서 출생한 김현영(왼쪽)은 명고수, 명창이였던 오봉기, 오봉운, 오봉필(오학선)로부터 민요와 장단을 배우면서 오덕성이란 예명을 가지기도 하였다.

광복후 당시 고전예술극장과 철도성예술극장에서 고수로 근무하였으며 그후 여러 교육기관들에서 후대교육에 힘써오다가 예술기관들에 소환되여 후비양성에 힘쓰면서 여러 농악들에 상쇠잡이로, 집사로 활동하였다.

특히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비롯하여 중요국가행사때마다 농악에 출연하군 하였다.

그는 장고와 북, 꽹과리, 징을 비롯한 타악기들을 능숙하고 기교있게 연주하여 명고수로 널리 알려졌다.

현재 인생의 로년기를 보람있게 보내고있는 그는 지방의 여러 농장들에 나가 농악후비양성을 위해 온갖 지혜와 정력을 다 바치고있다.

민간에서 명고수, 명창으로 활약하는 송용화로인

쾌활하고 락천적인 송용화로인은 장단을 치면 명고수요, 노래를 부르면 명창이다. 그리고 춤도 잘 추어 명무가로 알려져있다.

80고령을 눈앞에 둔 송용화로인은 명절날이나 휴식날이면 모란봉과 대성산에 찾아가 근로자들을 고무하기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때문에 《모란봉의 명배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전후시기에는 근로자예술경연에 참가하여 민요독창에서 1등을 한바 있으며 가두에서 예술소조를 조직하여 공장, 기업소들과 농장들에 찾아가 로동자들과 농장원들의 로력투쟁을 고무하였다. 특히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우리 당의 구호를 높이 받들고 모란봉과 대성산유원지에 찾아오는 근로자들을 적극 고무하였으며 오늘에 와서도 변함없이 가창과 가무활동을 벌리고 있다.

민간에서 명창, 명고수, 명무가로

널리 알려진 김원서로인

80고령인 김원서로인도 명절날이나 휴식날이면 모란봉과 대성산에 찾아가 가창과 가무활동을 벌리군 하여 《모란봉배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평양에서 성장한 그는 어려서부터 집근처에 있는 권번에서 울려나오는 노래소리를 듣고 《수심가》와 《엮음수심가》, 《양산도》와 《방아타령》 등을 비롯한 전래의 많은 민요들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서도민요들과 관북민요, 경기도민요들을 운치있게 부르며 4도, 5도롱성으로 민요의 멋을 살린다.

젊은 시절엔 예술소조공연에 참가하여 민요독창에서 2차에 걸쳐 1등을 한바 있으며 전후복구건설시기에는 가창대와 예술소조를 조직하여 공장, 기업소와 협동농장들에 찾아가 예술공연들을 진행하여 로동자들과 농장원들을 고무하였다.

조선민요의 멋과 맛을 잘 살리는 김원서로인은 민간에서 명고수, 명창으로 널리 알려져있으며 전문가들도 찾아와 민요를 배우고 있다.

민간의 명무가 태정란로인

1936년 3월 21일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출생하여 평양에서 자라났다.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졸업하고 국립무용예술극장에서 무용배우로 근무한바 있는 그는 최승희작인 무용극 《사도성의 이야기》, 《계월향》, 무용조곡 《맑은 하늘아래서》, 무용극 《반야월성곡》, 《해녀의 이야기》 등에 출연하였으며 무용 《조선의 어머니》에도 출연하였다.

이밖에도 《장고춤》, 《부채춤》, 《초립동》, 《장단과 춤》을 비롯한 여러 독무들에도 출연하였으며 민속무용들인 《돈돌라리》, 《흘라리》, 《농악무》 등에도 출연하였다. 특히 《장단과 춤》은 그의 독무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다.

진양조(진새)로부터 시작하여 살풀이, 굿거리, 중모리, 중중모리, 잦은모리로 이어지는 이 춤은 필요에 따라 장단을 보충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는데 조선춤의 멋과 맛을 집약적으로 살릴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여러 민요들과 장단들에다 자신의 춤가락들을 예술적으로 능숙하게 맞추면서 조선춤의 멋과 맛을 살리는 특기를 발휘하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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