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민족적정서가 반영된 조선춤기법​

민족적정서가 반영된 조선춤기법​

주체112(2023)년 6월 20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대를 이어 전해오는 가치있는 창조물들과 미풍량속을 귀중히 여기고 시대적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조선춤기법은 조선사람의 체질과 미감, 사상감정과 생활관습을 반영하여 창조된 우리 민족고유의 춤형상방법이다.

무용은 그 어느 예술형식보다도 민족적특성을 짙게 나타낸다. 무용에서의 민족적특성은 장단과 리듬, 선률로 이루어진 무용음악과 무용의상 등 여러 형상수단을 통하여 나타나지만 기본은 춤을 통하여 나타나게 된다. 춤에서 민족적특성은 춤동작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조선춤기법은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끊임없이 계승발전하여왔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고대시기 조선사람의 체질과 정서에 맞는 춤기법을 창조발전시켰다.

고대문헌에는 이웃나라에 전파된 고조선의 무용의 특징에 대하여 정서적인 음악에 맞추어 느리고 유순하며 정서가 깊게 춤을 추는것이라고 하였다. 그에 비하여 주변나라들에서는 빠르면서도 가락이 잦은 춤, 급하게 돌면서 절주가 없는 춤을 추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고조선의 무용이 당시 주변나라들의 춤과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민족적특징을 나타냈음을 보여준다.

고대시기에 창조된 조선춤기법은 삼국시기에 이르러 그 가짐과 놀림상에서 민족적특징을 더욱 뚜렷이 나타냈다.

그것은 고구려무덤벽화를 비롯한 당시 우리 나라 유적들의 춤그림과 이웃나라의 유적들에 그려진 춤그림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삼국시기에 우리 나라는 물론 이웃나라들에서도 긴소매옷춤이 추어졌다. 그러나 춤기법상에서 서로 차이를 보이였다.

고구려의 무덤벽화들에 그려진 긴소매옷춤은 모두 두팔을 앞 또는 옆으로 들어올린 상태이며 소매자락이 대체로 아래로 드리워져있다. 이것은 고구려의 긴소매옷춤이 정서적인 음악에 맞추어 소매를 부드럽게 끌어올리면서 우아한 기법으로 추어진 춤이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발해, 후기신라시기에도 무용은 고유한 민족적춤기법으로 더욱 발전하였다.

이 시기 많은 무용들이 대외교류의 흐름속에서 이웃나라들에 전파되였는데 《고려무(발해무용)》, 《신라무용》 등으로 불리우면서 그 나라들의 무용예술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려시기에 이르러 조선춤기법은 단일민족의 혈연적, 문화적공통성을 반영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삼국시기의 무용을 그대로 계승한 고려에서는 민족적인 춤기법이 통일적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근로인민들속에서 창조된 민속무용들은 물론 궁중의 향악무용, 당악무용, 아악무용들도 조선춤기법으로 추어지게 되였으며 민족적색채를 짙게 나타내게 되였다.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계승발전하여온 민족적인 춤기법은 지난 세기초 일제의 잔악무도한 민족문화말살책동속에서도 본색을 잃지 않고 우리 인민들의 생활속에서 굳건히 명맥을 이어왔으며 그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일부 진보적인 무용가들의 창작활동과정에 세계 여러 나라들에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졌다.

1930년대 초엽 일본에서 진행된 우리 나라 무용가의 공연을 본 외국의 예술인들은 《민족성이 충분히 표현되였으므로 보기만 해도 훌륭하다.》고 탄복하였다.

미국, 프랑스, 도이췰란드에서도 우리의 민족적인 춤기법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

이처럼 민족적인 사상감정과 정서를 짙게 반영하면서 발전하여온 조선춤기법은 우리 민족의 유구성과 단일성을 집약적으로, 직감적으로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문화적재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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