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문학예술의 계승자, 혁신자〉각지 문예동 맹원들③

〈재일동포문학예술의 계승자, 혁신자〉각지 문예동 맹원들③

《조선신보》2022.07.05

문예동은 일본 방방곡곡에 흩어져있던 문학예술가들이 집결하여 1959넌 6월 7일에 결성된 주체적이며 애국적인 첫 문예조직이다. 이역땅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곧바른 한길에서 문학예술을 창조하여온 각지 문예동 맹원들의 열정과 헌신을 한달에 1번 소개해나간다.(협력=문예동중앙)

《화음을 이루면 마음도 하나》/문예동京都 음악부 부부장 김육미씨

음악부 성원들과 함께 노래를 피로하였다.

문예동京都 음악부 부부장 김육미씨는 우리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초급부시기 우리 노래를 잘 부르는 실습선생님을 만난 그는 그 선생님처럼 되고싶어서 중급부부터 성악부에 속하였다. 이것이 《노래와의 만남이였다.》고 김육미씨는 회고한다.

김육미씨

그때로부터 그의 생활에는 언제나 우리 노래가 있었다. 우리 노래는 그의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로 되였다.

조대를 졸업하여 교단에 서면서 소조를 통해 학생들에게 우리 노래를 배워주었다. 현재도 학생예술경연대회에서는 반주자로서 학생들을 도와주고있다. 또한 가무단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도 한다.

문예동 창립 50돐공연을 비롯한 크고작은 공연에 출연하여 음악부 성원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 공연을 빛내이는데 기여한것이 그의 자랑이다. 특히 제40차 조대 정기연주회에서 합창 《압록강》을 부른것은 각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코로나재앙속에서도 신심을 잃지않고 《문예동 Web우리 노래 자랑 독창경연 2020》에 출전하여 성악기술을 련마하였다. 경연에서는 3등의 영예를 지녔으며 주변사람들의 축하와 격려의 말들에서 새로운 힘을 얻었다.

김육미씨는 《노래는 자기 몸이 악기가 되여 소리를 냅니다. 그러니 언제어디서나 즐겨 부를수 있고 장단에 맞추어 민요를 부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럿이 모여 함께 화음을 이루면 마음도 하나되여 풍부한 감정정서를 자아내게 합니다. 문예동교또지부 음악부 부부장으로서 앞으로도 조청노래소조를 이끌어 나갈것이며 우리 노래를 계속 사랑할것입니다.》고 말하였다.

행복으로 이끌어주었다/문예동広島 차우미씨

차우미씨는 문예동広島의 최고령 맹원이다.

일본학교에 다니던 그는 학생회 활동을 계기로 조대 리공학부에 진학하였다.

차우미씨

그가 우리 노래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학생시기 広島에서 관람한 만수대예술단 공연에 있다. 우리 민족예술에 매혹된 그는 자기 용돈을 모아 규슈에서의 공연도 관람하였다. 《꿈같은 그 시간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추억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결혼하여 1남2녀를 키웠다.

아이의 학교입학을 앞둔 어느날 그의 집을 찾아온것이 이전 문예동広島 박영미위원장이였다. 이것이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되였다.

차우미씨에게 있어서는 련습도 즐거운 한때이다. 누구보다도 련습을 잘한다.

그는 《평상시 일본사람들속에서 생활하기에 노래련습은 우리 동포들과 자리를 같이할수있는 마당이기도하고 사랑하는 우리 노래에 몸을 담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며 학생회활동, 조대에서의 경험, 문예동과의 만남이 자기의 인생을 행복으로 이끌어주었다고 이야기한다.

차우미씨의 노래에 바치는 정열은 젋은 맹원들에게도 큰 자극을 주고있다.

《도전을 해야 늘어난다》/문예동가나가와지부 후원회 리영자씨

서예교실 소조원들

리영자씨는 문예동가나가와지부를 후원하는 사업에 남다른 정열을 바치고있다.

유치반과 초급부교원으로 사업한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머니회사업을 하게 된 그는  어머니 《노래소조》와 《기악소조》를 무어 예술활동을 벌렸다.

리영자씨

현재도 우리 노래, 우리 문화를 배우는 마당에 적극 참가하여 후원사업을 벌리고있다.

그는 해방전에 규슈의 탄광에서 가혹한 로동에 시달리면서도 동포들이 모이는 마당이면 고향민요로 흥을 돋구던 아버지의 모습, 슬픔과 억울함을 노래로 하소연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 영향으로 민족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되였다.

2013년에 녀성동맹가나가와 가와사끼지부가 내온 서예교실에 솔선 참가하여 우리 글 판본체와 궁체며 한자의 다양한 서체들을 배우고있다.

새로운 과제에 소조원들이 주춤거릴 때면 《도전을 해야 실력이 늘어난다.》고 하면서 소조원들을 고무한다.

20명의 소조원들과 함께 만든 한석봉천자문의 대형병풍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을 창작하고있다. 해마다 열리는  《조・일우호전》과 고려서예연구회가 주최하는 《도꾜국제교류전》, 《교또전》들에서 남김없이 그 실력을 보여주고있다.

코로나재앙속에서도 《나이도 개성도 다른 우리 동무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배우면서 함께 성장하는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리영자씨는 말한다.

남편은 가장 친근한 강평원으로서 그를 살뜰히 지켜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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