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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문학예술의 계승자, 혁신자〉각지 문예동 맹원들⑪
무용, 문예동활동은 생활의 일부/문예동교또 무용부 신미화씨
《조선신보》2022.07.17
문예동은 일본 방방곡곡에 흩어져있던 문학예술가들이 집결하여 1959넌 6월 7일에 결성된 주체적이며 애국적인 첫 문예조직이다. 이역땅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곧바른 한길에서 문학예술을 창조하여온 각지 문예동 맹원들의 열정과 헌신을 한달에 1번 소개해나간다.(협력=문예동중앙)
신미화씨는 생활의 일부가 조선무용이며 문예동의 활동이라고 이야기한다.

문예동교또 무용부 부장인 신미화씨가 조선무용과 만난것은 초급부 4학년시절이였다. 그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났다.
《언니들이 춤추는 모습이 너무 눈부시고 내 가슴이 뿌듯해졌다. 조선학교에 편입한 나에게 있어서 우리 무용을 춤추는것은 발씨가 서투른 일이였지만 모든것이 신선하여 어느새 무용훈련실이 나의 보금자리로 되였었다.》고 그는 돌이켜본다.
우아한 민족의상을 차려입고 재치있는 장단가락에 맞춰 춤추던 그 설레이는 기쁨, 이를 온 몸으로 느낀 학생시절의 첫 무대를 그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초급부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생시절을 무용과 함께 보내면서 저도모르게 장단가락이 자기 몸에 스며들어 무용선생님이 되고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였다.
모교의 교단에 서면서 학생들에게 무용을 더잘 지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문예동 조청조 무용부에 소속하여 밤훈련도 거듭하였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다. 빈틈없이 교수준비를 하여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다가 녹초가 되여도 자기 몸을 채찍질하여 련습장으로 향하였다.
대규모무용공연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일본각지의 많은 동포들은 민족문화의 귀중한 재보의 하나인 조선무용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률동에 매혹되여 우렁찬 박수갈채를 보내였다.
그는 《일본땅 방방곡곡을 돌아 많은 무용수들과 교류를 깊여 또 유명한 작품들을 춤출수 있어 참으로 행복한 나날이였다.》고 말하였다.
어머니가 되여 교단을 떠난 후에도 문예동교또 무용부 부장을 맡고 녀성동맹책임자도 오랜 기간 맡았다. 생활의 일부가 조선무용이며 문예동의 활동이였다.
어렵고 힘들어도 왜 그렇게도 정을 쏟아 련습장에 발을 옮길수 있었는가-그 물음에 조선무용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정열의 꽃은 시들줄 모른다는것, 동포들을 애족애국의 한길로 고무추동하는 문예동교또의 한사람으로서 여러 예술분야에서 활약한 스승, 동지들과 함께 키잡아 활동할수 있는것이 더없이 기쁘고 마음의 기둥으로 되고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그리고 민족의 넋이 깃든 조선무용을 꿋꿋이 이어 교또동포사회를 민족예술로 활성화하기 위해 발벗고 나설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나서 자란 미더운 우리 학생들에게 민족예술전통을 전하고 풍부한 정서와 민족적자부심을 안겨주고싶다는 일념으로 그는 다시 교단에 서게 되였다.
그는 《우리 학교에서, 우리 재일동포사회에서 보답의 자욱을 새기고싶다. 아이들의 창창한 미래를 위하여 민족의 예술, 조선무용의 발전을 위하여 분발하고 또 분발하겠다. 나는 우리 무용을 사랑한다. 나의 무용인생은 아직도 계속된다.》고 힘주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