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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있는 작곡가 리면상
주체문학예술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문예인들
《로동신문》2026년 6월 28일
재능있는 작곡가 리면상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새세대들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였던 전세대들처럼 한생을 빛나게 살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
절세위인들의 자애로운 손길아래 창작적재능과 예술의 꿈을 마음껏 꽃피워온 문예인들속에는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수많은 음악작품들을 창작한 재능있는 작곡가 리면상선생도 있다.
1946년 5월 24일은 리면상선생에게 있어서 우리 음악발전의 참다운 길을 환히 내다보게 한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
그처럼 흠모하여마지 않던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신 그날 리면상선생은 문화인들은 문화전선의 투사로 되여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과 은혜로운 손길아래 리면상선생은 혁명을 알고 당을 아는 예술가, 음악으로써 우리 당정책을 옹호관철하는 혁명적인 작곡가로서의 첫걸음을 힘있게 내짚었다.
리면상선생은 《빛나는 조국》, 《승리의 5월》, 《산으로 바다로 가자》 등 많은 명곡들을 작곡하여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들의 환희와 기쁨, 조국의 아름다움을 긍지높이 노래하였다.
전시가요 《조국보위의 노래》도 리면상선생이 작곡하였다.
우리 인민의 복수심에 불을 달며 전선탄원가요로, 원쑤격멸의 행진곡으로 높이 울려퍼진 이 노래는 1950년 3월에 창작되였다.
어느날 리면상선생은 시인 조령출선생과 함께 가두고성기에서 울리는 방송원의 열기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였다.
원쑤들이 우리 공화국을 또다시 침입하여 온갖 만행을 감행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끓어오르는 격분을 금치 못해하던 두 창작가는 약속이나 한듯 창작실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원쑤에 대한 증오는 그대로 가사가 되고 선률이 되였다.
노래는 창작되자마자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속에 급속히 퍼져갔으며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의 나날에는 그 생활력이 더욱 힘있게 과시되였다.
리면상선생은 전화의 나날 《문경고개》, 《내 고향의 정든 집》, 《압록강 2천리》를 비롯한 많은 전시가요들을 창작하여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을 전쟁승리를 위한 성전에 떨쳐나서도록 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전후 리면상선생은 《눈이 내린다》, 《어머니당이여》와 같이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당의 사상으로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무장시키는데 이바지하는 가요들을 작곡하였다.
그는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진행된 《피바다》식혁명가극창조사업에도 참가하여 자기의 재능과 정열을 남김없이 바쳤다.
그 나날 리면상선생은 첫 김일성상수상자들중의 한 사람이 되였으며 인민이 사랑하는 재능있는 작곡가로서 우리 당이 바라고 의도하는대로 주체음악예술을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할수 있었다.
리면상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에게 돌려주신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배려는 끝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한 자리에서 리면상선생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그는 자신께서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작곡가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 기회에 리면상선생에 대하여 추억하시면서 새세대 예술인들속에서 그와 같은 이름있는 재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의 뜨거운 사랑속에 재능있는 작곡가로 삶을 빛내인 리면상선생은 그가 창작한 명곡들과 더불어 영생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