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지명유래​

평양의 지명유래​

주체112(2023)년 3월 30일

공화국의 수도로 온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는 평양은 대동강문화가 형성된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발상지이며 유구한 우리 민족사의 시원이 열린 유서깊은 고장이다.

평양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랜 력사를 가진 도시들중의 하나로서 동서방의 크고작은 수많은 도시들에 비해 천년이상이나 더 긴 력사를 가지고있다.

우리 민족의 첫 국가인 단군조선의 수도로 된 때로부터 장장 5천년의 유구한 력사적기간 평양은 시종일관 정치, 경제, 문화의 요충지로서 민족사발전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여왔다.

평양은 《부루나》라는 말을 리두로 적은 이름이다.

《부루나》는 고대조선말에서 《벌판》을 의미하는 《부루》라는 말과 《땅》, 《고장》을 의미하는 《나》라는 말이 합쳐져 이루어졌다.

본래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고장 즉 성시를 의미하는 말이였던 《부루나》는 점차 도읍지, 수도를 가리키는 말로 되였으며 단군조선의 성립발전과 더불어 고조선의 수도였던 오늘의 평양지역을 가리키는 단어로 알려지게 되였다.

고조선말기에 한자에 의한 우리 식 표기법에 따라 《부루나》를 평양이라고 적게 되였는데 평양의 《평》은 《부루》를, 《양》은 《나》를 옮긴것이다.

고조선시기에 평양을 일명 《님검성(또는 임검성)》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은 《임금이 있는 성》이라는 뜻이다.《님검성(또는 임검성)》은 후날 리두로 적으면서 《왕검성》이라고 하였다.

평양은 지난날 강성했던 고구려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언어문화적영향속에 국가성립의 초기부터 도읍(수도)이름을 고조선에서처럼 《부루나》라고 불렀다.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이후 옛 수도를 북평양이라고 불렀고 삼국통합의 전초기지로 삼고있던 한성을 남평양이라고 불렀다.

력사적으로 이것(평양과 북평양, 남평양)을 《고구려3경》이라고 하였다.

고려시기에 개경(개성)이 수도로 됨에 따라 그곳을 중경이라고 하고 평양은 서북지방의 옛 도읍지라는 뜻에서 《서경》이라고 하였으며 옛 고구려시기의 남평양은 《남경》이라고 불렀는데 이것 역시 《고려3경》이라고 하였다.

고려에 이어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평양은 정치, 경제, 문화의 요충지로 간주되여왔다.

오늘 평양은 공화국의 수도로서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이 변함없이 줄기차게 이어지는 유서깊은 성지로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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