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

사랑과 위훈의 철학이 담긴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

《우리 민족끼리》주체112(2023)년 7월 12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인민군전사들이 싸움의 불비속에서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여 그처럼 용감히 싸울수 있은 비결의 하나가 바로 그들의 고향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에 있다는것을 소박한 형상을 통하여 사색깊이 보여주고있습니다. … 이 가요는 사랑과 위훈의 철학을 깊이있게 밝혀주고있습니다.》

조국의 산발을 타고 저 멀리 하늘가로 유유히 울려퍼지는듯한 아름답고 류창한 선률에 담아 인민군전사들의 위훈소식을 어제도 오늘도 끊임없이 전해주는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어도 사람들의 머리속에 그처럼 생생히 새겨져있고 날이 갈수록 더더욱 즐겨부르게 되는것은 과연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이 노래야말로 조국을 지켜선 병사의 심정, 인민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한 병사의 노래, 인민의 노래이기때문이다.

전쟁과 함께 종군의 길을 걸어 수천리 포연속을 헤쳐온 시인 심봉원과 작곡가 김옥성이 불타는 1211고지를 찾은것은 주체40(1951)년 6월말경이였다.

고지에 오른 창작가들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탄속에서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달려드는 적들을 용감히 쳐물리치는 인민군용사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위훈이 얼마나 값비싼것인가를 온넋으로 절감하게 되였다.

고지에서 받아안은 충격은 결코 그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토록 치렬한 싸움이 끝난 뒤에 고지에 넘쳐나는 웃음과 랑만은 창작가들의 마음을 후덥게 하여주었다.

농민출신병사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주신 땅에서 발목이 시도록 밭갈이하던 기쁨을 손세까지 써가며 이야기했고 용해공출신병사는 제손으로 복구한 로에서 쇠물을 뽑던 환희를 마라초연기를 뿜으며 이야기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병사들은 품속에 소중히 간직한 훈장을 꺼내 정성껏 닦았고 고향에 보낼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병사들이 지닌 고향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승리에 대한 확신은 창작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모습과 감정을 노래에 담아야 한다는 창작적충동을 받아안게 하였다. 하여 작가와 작곡가는 화약내배인 창작수첩과 오선지에 시줄을 골라 적었고 선률을 엮어나갔다.

이렇게 노래는 이틀만에 완성되였다.

1211고지에서 직접 보고들은 전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소박한 꿈이 가사에 옮겨졌고 승리를 확신하는 전사들의 들끓는 랑만이 그대로 화려하고 류창한 선률로 이어졌던것이다.

1211고지전투의 불바다속에서 이렇듯 아름다운 노래가 메아리칠수 있은것은 그 서정적주인공들인 인민군용사들의 내면세계가 그토록 깨끗하고 아름다왔으며 그들의 아름다운 생활을 노래에 담으려는 창작가들 역시 그 어떤 슬픔과 고통도 과감히 이겨내고 인민의 목소리를 진실하게 담으려는 숭고한 인간정신의 체현자들이였기때문이다.

사실 그때로 말하면 작곡가는 가장 큰 마음속괴로움과 슬픔을 안고 창작활동을 벌리고있었다. 얼마전 작곡가는 미국놈들의 폭격으로 온 가족이 잘못되였다는 뜻밖의 비보를 받게 되였던것이다.

전호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우리 행복 삼키려는 원쑤미제 쳐부시고

빛난 훈장 가슴팍에 내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팔로써 안기리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팔로써 안기리라

가사의 마지막단락에서 굳어져버린 작곡가의 두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혔고 달리던 오선지우의 소리표도 멎어섰다.

사랑하는 온 가족의 생명과 행복했던 생활을 빼앗아간 미제가 남겨놓은 가슴속상처로 침식을 잃고 비운에 잠겨 모대기던 작곡가는 다시금 마음을 억세게 다잡았다.

《내가 나 개인의 불행에 포로가 되여 모대길 때가 아니다. 지금 이 조국땅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있는가? 일어나 싸워야 한다.》

이렇게 부르짖으며 두주먹을 쥐고 눈물을 훔친 작곡가는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얼싸안고 기뻐할 인민군용사들의 아름다운 랑만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 격정으로 끓어오르는 주옥같은 선률을 거침없이 적어나갔다.

이렇게 되여 불타는 고지에서 이 노래가 완성되였으며 병사들에 의해 급속히 퍼져나가게 되였다.

사랑이 열렬할수록 참된 행복을 빼앗으려는 원쑤에 대한 증오는 배로 커지기마련이다.

《적탄알이 비발치는 격렬한 싸움에도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네》라는 전시가요의 구절은 우리 병사들의 무비의 용감성, 대중적영웅주의가 어디에 기초하고있는가를 명쾌히 밝혀주고있다.

우리 병사들이 틀어쥔 총은 다른 민족에게 불행을 주는 침략의 총대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이 기다리는 정든 고향을 지키기 위한 애국의 총대, 조국수호의 총대였다.

애국의 더운 피가 끓는 인민군용사들이 확신한것은 승리였으며 전호가에서 그려본것은 정든 고향의 부모형제들과 하게 될 기쁨의 상봉이였다.

이 전시가요는 침략자들을 쳐부시는 싸움에서 위훈을 세워 빛나는 훈장을 가슴에 달고 집에 돌아가면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팔로써 안기리라는 내용으로 고향과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한껏 불러일으키고있다.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곧 승리이며 조국보위의 길에 세운 병사의 위훈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기쁨이고 영예이라는 사상을 생동하고 생활적인 이 구절로 더욱 뜻깊게 밝힌 여기에 작품의 철학적깊이가 있고 커다란 감화력이 있는것이다.

언제인가 한 전쟁로병은 1211고지방위전투때 병사들은 이 노래를 즐겨불렀다고, 어쩌다 전방에 고요가 깃들 때 노래 《전호속의 나의 노래》를 부르면 이 고지, 저 고지에서 아군병사들이 화답하여 전연의 산발이 들썩하였다고 감회깊이 추억하였다.

그러나 멸적의 총탄과 함께 승리의 노래포성이 터져나오는 1211고지를 《함정골》, 《상심령》이라고 부른 미제침략자들은 한시바삐 도망칠 궁리에 몰두하며 조선에 내리는 이 비 줄곧 차기도 하다라는 넉두리같은 노래를 주절대였다.

승리의 노래,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병사들처럼 강의하고 아름다운 인간들은 없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 《전호속의 나의 노래》와 같은 노래는 다른 나라에서는 나오지 못한다고 하시며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전시가요의 생명력을 그 누구보다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총포성없는 사회주의수호전이 벌어지던 시기에 공훈국가합창단의 음악포성으로 이 노래를 울려주시여 1950년대 인민군용사들이 발휘한 조국수호정신으로 살며 투쟁할 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억척불변의 신념을 천만군민의 심장속에 더 깊이 새겨지게 하시였다.

이 전시가요를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은 오늘도 사랑하고 즐겨부른다.

부를수록 조국앞에 지닌 성스러운 사명감을 자각하게 하고 당과 수령을 받들어 사회주의강국, 인민의 락원을 이 땅우에 반드시 일떠세울것이라는 신심을 백배해주는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

위대한 전승의 력사와 더불어 이 땅에 끝없이 울려퍼지는 전시가요들은 오늘도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나아가는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의 가슴마다에 필승의 신심과 랑만을 더해주며 기적과 위훈창조에로 힘있게 떠밀어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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