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김일성상》계관인이며 총련영화제작소 고문인 려운각동지가 세상을 떠났다

《조선신보》 2015.04.08

총련영화제작소 고문 려운각동지

총련영화제작소 고문 려운각동지

《김일성상》계관인이며 공화국 인민예술가인 총련영화제작소 고문 려운각동지가 지난 3월 19일 오전 1시 30분 기관지염으로 입원치료중 89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1926년 2월 24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서 태여나 망국노의 설음과 학대를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조국해방을 맞이한 려운각동지는 서울의 동국대학교에서 배우면서 6촌형이 되는 독립운동가이며 해방직후 김일성대원수님을 여러번 만나뵈옵고 인민이 주인이 된 통일조선을 일떠세우기 위하여 《조선인민당》을 창당하여 당수로 사업한 려운형선생의 경호 및 련락원으로 활동하였다.

려운형선생이 미군정에 의해 암살당한 후 피신해있다가 1949년 6월 일본으로 건너와 호세이대학과 니홍대학 예술학부 영화과에서 배운 려운각동지는 1952년 3월부터 가나가와현 쯔루미조선초급학교 교원으로 애족애국운동에 떨쳐나섰다.

려운각동지는 1953년 6월부터 재일조선영화인집단의 사무국장으로, 1955년 5월부터 1998년 6월까지 문예동중앙 영화부 지도원, 부부장, 부장으로, 1974년 2월부터 1998년까지 총련영화제작소 부장, 부소장, 소장의 중책을 지니고 김일성대원수님과 김정일대원수님의 총련령도사와 총련의 애족애국활동을 영화로 제작하는 사업에 헌신하였다.

특히 조국과의 합작으로 1985년에 예술영화 《은비녀》, 1987년에 예술영화 《어머니의 소원》의 제작에 크게 기여한 려운각동지는 1998년 7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총련영화제작소 고문으로 영화제작소가 제작한 기록영화들과 동영상필림들을 보관정리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한 사업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치였다.

려운각동지는 김일성대원수님과 김정일대원수님의 크나큰 신임과 친어버이은정에 충정으로 보답하려는 굳은 신념과 깨끗한 량심을 간직하고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따라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위대성선전과 조국선전을 비롯한 총련의 애족애국운동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헌신해온 충직한 총련일군이였다.

대원수님들께서는 려운각동지의 애국충정과 공로를 높이 평가하시여 그에게 존함시계표창, 《김일성상》과 공화국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의 명예칭호를 수여해주시였으며 국기훈장 제1급(6번)과 조국통일상, 로력훈장(3번), 공화국창건 기념훈장들과 국기훈장 제2급(4번)을 비롯한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주시였다.

려운각동지는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났으나 그가 백두산절세위인들과 김정은원수님에 대한 충정의 열정을 안고 총련을 조직사상적으로 강화발전시키고 조국의 통일과 륭성번영에 바친 공적은 재일조선인운동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이다.

고 려운각동지의 고별식은 고인의 생전의 뜻에 따라 지난 3월 24일 가족들의 밀장으로 거행되였다.

총련중앙은 《김일성상》계관인이며 인민예술가인 총련영화제작소 고문 고 려운각동지를 추도하는 모임을 오는 4월 22일(수요일) 오후 4시부터 도꾜의 아루카디아市ヶ谷(私学会館)에서 거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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