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

우리 당의 추억속에 영생하는 관현악지휘자 허재복

주체문학예술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문예인들

우리 당의 추억속에 영생하는 관현악지휘자 허재복

《로동신문】2026년 9월 13일

주체문학예술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재능있는 문예인들속에는 황홀한 음악지휘로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던 지휘자 허재복동지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명작창작으로 수령을 옹위하고 혁명을 보위하며 당의 척후대, 나팔수로 복무해온 전세대 문예전사들의 투쟁전통을 이어받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우리 당을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사상전선의 기수가 되여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취미와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며 음악신동으로 소문난 허재복동지였지만 그것은 나라없던 시절 류랑민의 자손이라는 사무치는 설음과 함께 빛을 볼수 없었다.

허재복동지의 예술적재능은 해방된 조국의 품속에서 비로소 꽃펴나게 되였다.

그를 예술인재양성기지로 불러주시고 그처럼 가렬처절했던 전화의 나날 외국류학의 길로 떠밀어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으로 돌아온 그가 무대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몸소 보아주시고 맵시있는 지휘자라고 치하해주시며 젊고 재능있는 그의 앞날을 축복해주시였으며 그에게 중요한 예술공연의 지휘도 맡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속에서 허재복동지는 20대부터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30대초반에 벌써 인민예술가의 영예를 지닐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만수대예술단의 지휘자, 부단장, 단장의 높은 정치적신임과 믿음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허재복동지는 그 나날과 더불어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과 지향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절감하게 되였으며 순수 재능만으로는 혁명과 인민을 위한 참다운 예술을 창조할수 없다는 귀중한 진리를 깊이 새기였다.

하기에 그는 흔히 사람들은 서른살이면 철이 든다고 하지만 자기는 마흔살에야 철이 들기 시작하였다고, 앞으로 어떤 바람이 불어도 당과 수령께 끝까지 충실하겠다고 자주 이야기하군 하였다.

당의 독창적인 문예방침을 음악예술창조의 확고한 지침으로 삼은 허재복동지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를 비롯한 수많은 음악작품창조사업에 자기의 재능과 열정을 쏟아부으며 음악안삼블과 그 형상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활동을 벌려 주체예술의 위용을 남김없이 시위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지난 8월 창립 80돐을 맞는 국립교향악단에 보내주신 축하서한에서 허재복동지를 비롯하여 지칠줄 모르는 정열로 주체예술의 화원을 풍만하게 한 재능있는 지휘자, 연주가들의 모습은 지금도 우리 인민들의 망막에 깊이 새겨져있으며 한생토록 어머니조국을 노래한 혁명적문예인의 값높은 삶의 귀감으로 되고있다는 최상최대의 평가를 안겨주시였다.

절세위인들의 자애로운 손길아래 허재복동지는 우리 인민들이 잊지 못해하는 재능있는 지휘자로 영생의 삶을 빛내이고있다.

허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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